“지도자 시절에 13~14년 동안 태릉선수촌을 경험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도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배구 코트의 제갈공명’에서 국가대표 선수촌장으로 변신한 신치용(64) 신임 선수촌장은 성폭력 등 비위로 어수선한 체육계에 체계적인 ‘지도자 교육’이 절실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신 촌장은 11일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7일) 선수촌장으로 선임된 뒤 어제(10일) 저녁에 들어와 하룻밤 자고 오전5시에 일어났다. 새벽부터 운동을 준비하는 선수들을 보고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이곳 선수촌에서도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던 만큼 성폭력 등 각종 비위를 묵과하지 않겠다. 무엇보다 훈련 방법과 인성, 올바른 리더십 등 지도자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선수들이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면서 “선수들이 무시당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문화를 없애겠다”고 강조했다. 이제 막 선수촌을 둘러보고 선수들과 상견례를 한 터라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동석한 정성숙(47) 부촌장도 신 촌장과 의견을 공유한 만큼 ‘변화하는 선수촌’의 첫걸음은 다양한 형태의 지도자 교육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배구 대표팀 감독으로 2002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등을 지휘한 신 촌장은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왕조를 이끌었고 2017년 12월까지는 제일기획 스포츠구단 부사장도 지냈다. 신 촌장은 엘리트 위주였던 스포츠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며 소년체전을 폐지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개인 의견으로는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 선수촌 합숙 축소에 대해서도 “우리 선수들은 외국 선수들에 비해 신체조건이 밀리는 만큼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합숙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정 부촌장은 “15년 만에 선수촌에 들어오게 됐다. 현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예전과는 다른 요즘 선수들의 생각을 지도자들이 못 쫓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선수촌의 규칙과 규정을 재정비하고 지도자들부터 훈련과 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도록 소통하겠다”고 했다.
한편 체육회는 이날 선수촌 한편에 선수인권 상담실을 열었다.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과 상담사 1명 등이 근무하면서 폭력·성폭력 등 각종 고충을 상담한다. 사건 발생 때는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즉각적인 신고 절차도 진행한다. 유 위원은 “선수촌은 선수와 지도자 등 1,000명 넘는 인원이 지내는 곳이다. 이런 곳이 마련돼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 격의 없이 방문해 대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도전 과제”라며 “일단 선수들 동선에 맞춘 최적의 장소에 상담실을 마련했고 방음 등의 환경은 갖췄다. 전문 인력도 더 채용해 철저하게 선수들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천=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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