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27·토트넘)은 지금까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치른 잉글랜드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경기에서 총 16골을 넣었다. EPL 웸블리 경기에서 손흥민보다 더 많은 골을 책임진 토트넘 선수는 2015-2016, 2016-2017시즌 득점왕 해리 케인뿐이다.
웸블리에서 60m 드리블에 이은 쐐기포로 레스터시티를 혼내준 손흥민이 또 다른 사냥감을 홈으로 불러들인다.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이뤄진 유니폼 때문에 ‘꿀벌군단’으로 통하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도르트문트다. 토트넘은 오는 14일 오전5시(이하 한국시각) 웸블리에서 도르트문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을 치른다.
도르트문트에 손흥민은 천적이나 다름없다. 손흥민은 독일 함부르크와 레버쿠젠 시절부터 토트넘으로 옮긴 후까지 통산 10번 도르트문트를 만나 8골이나 넣었다. 지난 시즌 챔스 때는 조별리그에서 맞붙어 홈과 원정에서 모두 1골씩을 넣었다. 국내 팬들은 꿀벌을 다스린다고 해서 손흥민을 ‘양봉업자’라고 부른다.
도르트문트는 그러나 지난 시즌의 도르트문트와 많이 다르다. 지난 시즌 토트넘과 맞붙을 당시 최전방에 나섰던 피에르 오바메양이 EPL 아스널로 옮겼지만 FC바르셀로나에서 데려온 파코 알카세르가 분데스리가 득점 4위(12골)를 달리고 있다. 검증된 기량에도 잦은 부상 탓에 ‘유리몸’ 오명을 썼던 마르코 로이스는 13골(6도움)로 득점 2위에 올라 있다. 후반기로 접어든 분데스리가에서 도르트문트는 15승5무1패(승점 50)를 기록해 ‘거함’ 바이에른 뮌헨에 5점 앞선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주포 케인과 델리 알리의 부상 공백에도 손흥민의 활약으로 리그 3위를 유지하고 있는 토트넘으로서는 최근 도르트문트의 기세가 다소 꺾인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도르트문트는 2월 들어 3경기에서 매번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와의 리그 경기에서 1대1로 비겼고 브레멘과 독일컵 3라운드에서는 3대3 무승부 뒤 승부차기 끝에 졌다. 지난 9일 리그 호펜하임전에서는 3대0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3대3으로 비겼다. 공격의 핵이자 주장 로이스는 허벅지 부상의 여파로 호펜하임전에 결장했는데 구단에 따르면 챔스 16강 1차전 출전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상대 전력이 최상이냐 그렇지 않으냐는 손흥민의 요즘 골 감각이라면 크게 상관없을 듯하다. 손흥민은 11일 끝난 EPL 26라운드 레스터전에서 2대1로 앞선 후반 추가시간 쐐기골을 터뜨렸다. 무사 시소코가 수비 진영에서 길게 연결한 볼을 받은 손흥민은 하프라인 뒤부터 60여m를 달려 수비진을 떨어뜨린 뒤 왼발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지난해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독일전의 쐐기골을 떠오르게 하는 ‘폭풍 질주’였다. 아시안컵에서 복귀한 뒤 3경기 연속골로 시즌 15호, 리그 11호 득점이다. 리그 득점 공동 5위. 또 지난해 12월 16라운드 원정 1골 1도움과 이날 득점을 더해 레스터전 통산 9경기 5골 3도움으로 ‘여우군단’ 킬러의 면모를 뽐냈다. 3대1로 이긴 토트넘은 리그 4연승으로 승점 60(20승6패) 고지를 밟았다. 이날 첼시를 6대0으로 격파한 선두 맨체스터 시티(승점 65)와 5점 차다.
손흥민은 이날 전반에 페널티 지역에서 넘어진 뒤 페널티킥을 얻는 대신 시뮬레이션 액션에 따른 경고를 받는 다소 황당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경기 후 손흥민은 “경고를 받았을 때 무척 놀라고 실망스러웠고 조금 화도 났지만 심판 판정도 축구의 일부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득점 장면에 대해서는 “1대1 상황과 왼발 슈팅에 자신 있었다”고 했다.
손흥민의 3경기 연속골은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시즌 두 번째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손흥민은 올 시즌 리그에서 11월24일 이전에는 7경기에서 유효슈팅 1개뿐 득점이 없었다. 11월24일부터 13경기에서 21개 유효슈팅을 날리며 11골을 넣었다”고 밝혔다. 손흥민은 잉글랜드 무대 진출 후 매 시즌 11월 말이나 12월부터 몰아치기를 선보이고 있다. 최근 컵 대회 포함 11경기에서 무려 10골이다. 슈팅이 막히고 드리블은 끊기는 상황이 많았던 이날도 가장 마지막 순간에 골망을 출렁이며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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