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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3일’ 부선 전포 카페거리…“오래 가기 위해, 함께 가자”

사진=KBS 제공




17일 방송되는 KBS2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멍키스패너와 카페라테 - 부산 전포 카페거리’ 편이 전파를 탄다.

얼마 남지 않은 공구상들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던 도심 속 쇠락한 뒷골목. 텅 빈 거리, 작고 아기자기한 카페와 공방들이 세월의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 골목에 사람들이 모여 든다. 철을 깎는 쇳소리와 구수한 커피 냄새가 어우러지고 낡은 전파사와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곳. 이질적인 공간 하나하나가 모여 묘한 조화를 이루는, ‘부산 전포 카페거리’에서의 3일이다.



전포 카페거리는 십여 년 전만해도 전자·공구상가가 번성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상가의 주축이었던 버스 공장이 이전하며, 공구상가 역시 자연스레 이전 혹은 폐업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렇듯 쇠락한 도심의 뒷골목으로 남겨져있던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분 건 2009년 무렵. 도시의 젊은이들이 공구 골목에 있는 허름한 빈 점포를 소자본으로 빌려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낡은 상가 사이로 독특한 디자인과 감성을 갖춘 가게들이 자리 잡은 이색적인 풍경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지금의 ‘전포 카페거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후 2017년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꼭 가봐야 할 세계명소 52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되며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SNS에 ‘전포 카페거리’를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만 수십만 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빈티지 감성과 아날로그의 편안함에 끌리는 ‘뉴트로’ 시대의 감성이 제대로 통한 셈이다. 골목골목 페인트 냄새가 나고 철을 깎는 쇳소리가 함께 울린다. 전자상이 몇 남지 않은 전자상가엔 주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은 카페와 공방들이 들어와 새로운 이웃이 되었다. 이질적인 공간들이 한 데 모여 있는 모습이 묘하게 눈길을 끄는 곳. 수많은 골목 상권의 유행 속에서 창의적인 발상과 특별한 테마로 자신들만의 미래를 그려 나가고 있는 오늘의 이 거리에 ‘다큐멘터리 3일’이 함께 했다.

▲ ‘취향’의 발견



전포 카페거리의 오늘을 만든 건 단언컨대 ‘취향’이다. 접근하기도, 이용하기도 훨씬 편한 근처 번화가를 두고 사람들이 구태여 좁은 골목 사이를 누비는 것은 바로 카페거리만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다. 몇 걸음 건너 하나씩 찾아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결코 이 거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의외의 공간에 숨겨진 개성 넘치는 카페와 상점들은 전포 카페거리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다. 복고풍 의상을 대여해주는 흑백사진관, 혼밥 달인들만 할 수 있다는 ‘혼자 고기 구워먹기’를 권장하는 1인 화로구이 전문점,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을 가게 가득 전시해둔 캐릭터 카페까지. 전포 카페거리에서 주인의 ‘취향’은 곧 가게의 ‘생존’과 연결된다. 자신의 취향에 대한 애정과 확신은, 불안한 창업 경쟁 속에서 오래오래 내 가게를 지키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게 한다.

▶ 그 일이 밥 먹여준다



열심히 모아온 캐릭터 장식품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카페를 창업하게 되었다는 캐릭터 덕후 김푸름 씨. 창업 한 달 차 카페거리 새내기인 푸름 씨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기쁨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낸다. 자신의 취향을 함께 좋아해주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푸름 씨가 파는 건 단순히 커피 한 잔, 와플 한 조각이 아니다. 푸름 씨는 자신의 취향을 팔고, 손님들은 그녀의 취향을 구매한다. 취미가 곧 직업이 되어버린 푸름 씨의 삶. 그녀에게 일터는, 행복이다.

“제가 캐릭터 물건을 좋아해요. 물건을 모으고 나니 전시를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모아둔 걸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고. 그래서 전시와 카페를 같이 하는 거예요. 전시만 해선 돈이 안 되니까.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걱정은 되는데 그냥 잘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젊으니까.”

- 김푸름(28)

▲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투박한 생김새의 오래된 공업사가 즐비한 거리, 주위를 둘러보면 그 못지않게 낡고 허름한 느낌의 가게들이 눈에 띈다.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도, 가게를 찾는 손님도 앳된 느낌이 가득한데, 희한하게 가게의 외관에서 나이테가 잔뜩 묻어난다. 얼핏 지나칠 법한 낡은 외관의 가게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건, 바로 ‘감성’을 잘 공략한 덕이다. ‘뉴트로(New-tro)’,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뜻하는 이 단어는 최근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실제로 과거에 유행했던 빈티지한 감성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사랑 받는 상황을 보면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의 네모반듯한 가게보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낡은 콘크리트 벽에 끌린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화려한 테이블 대신,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좁은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고 감성을 공유한다.



▶ 왜냐고 묻는다면, ‘좋아서’

전포동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문민수·문치주 형제. 형제가 운영하는 카페의 외관은 어딘가 남루하다. 번듯한 가게와는 거리가 멀다. 나무를 툭툭 깎아 만든 테이블, 직접 설치한 조명들까지. 좁은 공간 곳곳에 형제의 손때가 가득 묻어있다. 자신들의 애정을 담아 직접 꾸며낸 이 공간에서 자신들의 감성이 담긴 커피를 내린다. 많진 않지만, 그 감성을 함께 즐겨주는 손님들도 생겼다. 누군가의 눈엔 영 모자라고 마뜩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봐선 모른다. 작지만 진짜인 그들의 공간.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처음 가게를 열게 된 것도 ‘내가 좋아하는 감성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줄까?’ 하는 생각에서였어요. 1년 정도 해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긴 있더라고요. 그 수가 적을 뿐이지.”

- 문치주(37)

“좋아하는 일을 오래 이어나가기 위해서 어제 손님 한 명이 왔으면, 오늘은 두 명을 오게 하기 위한 고민은 계속 해야 할 것 같아요. 저희의 취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문민수(39)

▲ 오래 가기 위해, 함께 가자

전자·공구상가가 즐비하던 자리에 카페가 생겼다. 전자 부품과 공구를 찾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대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러 온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피할 수 없는 세상의 변화고, 시대의 흐름이라지만 그 과정에서 원치 않게 삶의 터전을 떠난 이웃도 생겼다. 빠르게 이뤄져버린 변화를 탓하는 건 아니다. 다만 평생을 천직이라 믿고 살아온 일을, 피땀으로 일궈낸 가게를 접어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지금의 카페거리를 만든 건 단지 새로 들어온 개성 넘치는 가게들만이 아니다. 쇳소리가 울리고, 커피 향이 흐르는 이색적인 골목 풍경에 일조한 건 오랫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이 거리의 터줏대감들이다. 카페거리의 정체성을 지키고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건물주는 수 년 간 가겟세를 한 번도 올리지 않는 방법으로 상인들을 지켜준다. 오래 가기 위해선 함께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단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나의 어린 이웃



좁은 골목 사이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작은 전파사 하나. 독립서점과 카페 사이에 자리 잡은 모습이 묘하지만 어색하지 않다. 이렇듯 세대와 종목을 불문하고 옹기종기 모인 가게들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전파사를 운영하는 김문주 씨도 한 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이 골목을 떠나야 하는 건가,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다잡아준 건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친구였다. 이 골목에서 함께 머무르며 오래 장사하자는 어린 이웃의 말에 김문주 씨는 이 자리를 꿋꿋이 지키기로 결심했다.

“사실 카페거리만으론 이 동네에 발전이 있을 수 없어요. 기존에 있는 업체들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다양한 업종들이 들어와야지. 기존의 가게들과 새로운 가게들이 함께 골목을 지키며 발전하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해요. 저는 이 자리에 계속 있을 겁니다.”

- 김문주(59)

/김호경기자 khk0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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