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조현탁 감독님과 미팅을 했어요. 첫날 대본 좀 읽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신 뒤, 한번 더 만나보자고 했어요. 그 뒤 며칠 뒤에 다시 만났어요. 2번째 만났을 때, 같이 하자고 제안을 주셨어요.”
유성주는 지난 1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극본 유현미/연출 조현탁)에서 이명주(김정난)의 남편이자 주남대병원 기획조정실장이었던 박수창 역을 맡아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박수창은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아들 영재(송건희)와의 불화로 자살을 선택한 아내 이명주(김정난)의 마지막 모습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는 아버지였다.
과거에 대한 괴로움으로 총구를 자신의 입에 겨누기까지 했던 수창은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으로 한서진(염정아)과 김주영(김서형)을 찾아온다. 이후 유성주에게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어린이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뽀로로’의 친구인 루피의 성난 모습에 수염을 합성시켜 ‘루피수창’이란 그림이 생겨나게 된 것. 실제로 유성주의 딸은 ‘루피’를 좋아해서 아빠의 별명을 더욱 신기해했다고.
“‘루피수창’이란 별명은 뒤늦게 알았어요. 스태프가 카톡을 보내 주셔서 알게 됐어요. 이게 뭐냐고? 라면서 저도 놀랐죠. 아이를 키우는 아빠라 저 역시 뽀로로와 그 친구인 루피를 잘 알고 있어요. 어린 딸로 자신이 좋아했던 캐릭터라 재미있어 하더군요. 딸이 봐도 ‘루피수창’이란 별명이 거부감이 없나봐요. 하하. ”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도 ‘SKY캐슬’ 드라마를 시청하며 유성주 배우를 응원했다. 수염을 달고 나온 영재 아빠를 보시고선, “갑자기 수염 달고 나오더라. 열심히 해라”며 격려했다며 유성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입시 코디네이터로 등장하는 김주영 선생은 모든 부모들이 신처럼 떠 받드는 존재였다. 그에 반해 수창은 김주영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저수지에 빠질 만큼 아찔한 코너에 몰아놓는 일도 감행한다. 이후 박수창은 분노에 차서 “내 마누라도 내 아들도 널 선생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을 텐데, 부모한테 복수하라고 부추겨? 장차 일어날 불행을 뻔히 알면서, 니가 사람이야? 니가 인간이냐구?”라며 쏘아붙인다.
“수창이 워낙 다혈질인 부분이 있지만,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수창은 더 이상 다른 가족들이 이런 피해를 입지 않게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그 다음, 또 그 다음 가족으로 번지는 건 막고 싶었던거죠. 결국 자기 반성의 마음이 컸어요. 김주영 선생이 자기가 아꼈던 후배 강준상의 딸 예서를 맡는다는 걸 알고선 이 집도 불행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을 거에요. 그럼에도 김주영이 멈추지 않는다는 걸 알게된 뒤, 이수임에게 소개시켜주게 되는거죠.”
유성주는 4회차 분량의 대본을 받고 첫 촬영을 시작했다. 처음엔 “이렇게 좋은 역할을 왜 나에게?”란 의문이 먼저 들었고, 7부 대본에 또 다시 등장한 걸 보고선 “(감독님의)사라지는 인물이 아니구다라는 게 이 뜻이었구나”라는 걸 체감했다. 그리고선 마지막 대본까지 받고선 “솔직히 20부까지 등장할 지 정말 몰랐다”며 여전히 믿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초반 대본을 봤을 땐, 어떤 역사가 있는 인물인지 안 나와 있어서 ‘빨리 사라지는 인물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첫 리딩 후 작가님이 ‘뒤에 박수창 인물이 다르게 나옵니다. 앞 부분에서 할 수 있는 것 만큼 해보세요.’라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감독님도 첫회를 찍고 나서 ‘사라지는 인물이 아니다’ 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도 수창이네 집안 자체가 불안하고, 인물 자체가 워낙 불안해서 이렇게 오래 등장할지는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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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주 스스로도 “수창은 가족들에겐 거의 최악의 아빠이다. 그런 부분에서 자기 반성도 있어야 하지 않았나” 라며 드라마에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의미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생각의 변화가 있었음 한다는 바람도 밝혔다.
“작가님이 허구적인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 자료를 많이 수집해 집필하셨다고 들었어요. 지금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과 관련된 드라마인거죠. ‘이 드라마를 통해 생각의 변화가 있었음 한다’는 제작진의 의지와 염원이 담긴 작품입니다. ”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난 연극은 소년에게 감동과 충격을 안겼다. 직장인들이 하는 노동소재의 연극을 처음 접한 유성주는 “잔향이 오래 갔다”고 고교 시절을 회상했다. ‘연극을 한번 접해봤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마음 속에 늘 품고 있었던 고등학생은 담임선생님을 설득해 연극반을 만들었다. 그렇게 연극반을 만들고 연극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20년이 넘게 배우로 살아온 유성주,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미지의 것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안겨다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 배우 생활은 힘들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73년생으로 40대 중반을 넘어선 그에게 누군가는 ‘매체 쪽으로 빨리 시작하지 그랬어’ 라는 말을 건네기도 하지만 그는 ‘후회는 없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연극 무대에 설 것이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배우로 생활하면서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기분 좋았던’ 기억이 더 많아요. 어떤 순간이 더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다기 보다는 관객과 만날 때가 좋아요. 특히 연극이든 드라마든, 처음 만나서 리딩할 때 느낄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이 좋아요. 각자 배역을 가지고 약간의 긴장감이 형성 된 것도 있지만, ‘이 작품이 어떻게 갈까’ 기대감이 생기잖아요. ”
부산 연극 무대에서 오랜 시간 터를 닦아온 유성주는 해운대의 ‘연극 키드’로 불릴만했다. 이후 2012년 연극 ’그게 아닌데’로 서울 무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 ‘그 개’ ‘옥상 밭 고추는 왜’ ‘한여름 밤의 꿈’ 등 굵직한 연극들에 출연하며 내실을 다졌다. 그에게 첫 연극은 수 많은 작품상을 안겼고, 그에게 첫 드라마는 대중들의 엄청난 관심을 몰고 왔다.
“‘그게 아닌데’ 가 극단 청우의 대표작이긴 하지만, 저에겐 의미 깊은 연극입니다. 그 해 모든 연극상을 다 탔죠. ‘스카이 캐슬’ 은 드라마로서 처음 작품인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에 감사한 마음이 커요. 첫 드라마로 포상휴가까지 다녀와서 더 의미 깊어요. 오랜 시간 배우 활동을 해온 이들도 포상휴가는 처음이란 분들도 많더군요. 전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SKY 캐슬’로 보다 활발한 활동을 예고한 유성주는 오는 3월 23일 첫 방송을 앞둔 tvN 새 주말 드라마 ‘자백’으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후 올 여름엔 극단 청우의 ‘그게 아닌데’ 앙코르 공연으로 다시 한번 연극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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