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대표 자리를 놓고 벌이는 주자들의 레이스가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진태 의원은 후보 등록한 지난 12일부터 전당대회를 5일 앞둔 22일까지 ‘월화수목금금금’ ‘주 100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일정으로 전국을 누비며 표심 잡기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후보 간 ‘제 살 깎아먹기’식 비방이 난무하고 지지자들 간의 ‘욕설·막말·몸싸움’ 충돌도 빚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 같은 ‘진흙탕 싸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당권을 거머쥐려고 하는 것일까. 평생 쌓아올린 이력에 자칫 치명적인 흠집을 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답은 어렵지 않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 했다. 당 대표에 오르면 그만큼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 등 ‘3김’이 정치활동을 하던 ‘3김 시대’의 총재(당 대표)가 가졌던 권한과 위상 등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유력 정당의 대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막강한 힘과 입지를 갖게 된다.
◇당권 잡으면 대권 보인다=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총 12명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당 대표를 맡은 적이 없는 인물은 고 최규하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등 4명뿐이다. 1979년 10·26사태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뒤 대통령직을 승계한 고 최 전 대통령, 12·12군사정변 등을 통해 정권을 잡았던 전 전 대통령 등 정당체제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통령에 올랐던 이들을 제외하면 단 2명밖에 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당 대표가 대통령의 충분조건은 못돼도 필요조건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더 쉽게 풀이하면 당 대표가 된다고 해서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당 대표를 지내는 게 가능성 측면에서 훨씬 높다는 얘기다. 비교적 최근의 예를 들자면, 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각각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새누리당(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사실상의 당 대표) 자리에 오른 뒤 당의 탄탄한 조직력 등을 기반으로 대통령이 됐다.
보수 진영의 잠룡인 황 전 총리와 오 전 시장의 행보도 결국 이런 원리에 입각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황 전 총리와 오 전 시장 모두 대권 도전에 앞서 당권을 잡는 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를 누구보다 면밀히 따져봤을 것”이라며 “대권에 도전할 생각을 가진 그들이 한결같이 전당대회에 나가기로 결정한 사실은 당 대표가 되는 것이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메리트가 있다는 걸 잘 증명해주지 않느냐”고 말했다.
◇생살여탈권 거머쥔 절대 ‘갑’=더불어민주당 당헌 제29조에 따르면 당 대표의 지위와 권한은 △당무 통할 △주요 회의 소집 및 주재 △주요 당직자 추천 및 임면 △당무 전반에 관한 집행·조정 및 감독 △예산 편성 △공직선거후보자 추천 등이다. 한국당 당헌 제25조에 규정된 당 대표의 지위와 권한도 민주당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인사 권한이다. 양대 정당의 당헌·당규는 그 권한을 의결기구의 심의·의결 등을 거쳐 당 대표가 행사하도록 하고 있지만 전략공천이나 비례대표 공천 등을 할 때 당 대표의 ‘입김’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2번’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가 ‘셀프 공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더 많은 ‘자기 사람’을 확보해 세를 넓힌 뒤 자신의 이념과 철학 등을 관철하려 하는 정치의 생리상 공천권과 인사권은 당 대표에게 주어지는 그야말로 ‘절대반지’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지명만 하면 누구라도 국회의원으로 만들 수 있었던 당 총재에 비해 현재 당 대표의 힘은 많이 약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설령 약해졌다고 해도 생살여탈권은 생살여탈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천권과 인사권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당 대표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살받이’ 당 대표의 숙명=그렇다고 해서 당 대표가 되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 대표가 되는 순간 여당 대표는 야당의, 야당 대표는 여당의 집중공격 대상이 된다. 당 대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현안에 대한 입장을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시로 밝혀야 한다. 분초(分秒) 단위로 짜인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 ‘일거수일투족’이 대부분 여과 없이 노출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국 남성들은 결혼 상대로 베트남 여성을 선호한다” “정치권에 정상인가 싶을 정도의 정신 장애인들이 많다”는 등의 발언으로 야당 등으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 물론 비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이들 언급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당 대표가 아니었다면 해당 발언이 이렇게 널리 알려져 혹독한 비판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역시 당 대표 시절 상대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여당의 공격보다 더 힘든 게 사실 당내 다른 계파의 공격”이라며 “맷집이 약한 당 대표는 일주일도 못 버틴다. 당 대표가 갖춰야 할 제1 덕목은 바로 센 맷집”이라고 말했다. /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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