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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이곳-'완벽한 타인' 영랑호] 하나둘 드러나는 불륜과 거짓말...인간의 욕망을 품은 호수

바닷물, 민물 섞인 속초 영랑호

둘레 8km 호수에 산책로 조성

고요한 호수 수면에 비치는

억새·자작나무 풍경 장관

‘완벽한 타인’의 스틸 컷.




2018년 충무로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완벽한 타인’이었다. 개봉 전까지 별다른 관심을 모으지 못했던 이 영화는 상영 이후 입소문을 타며 오직 이야기의 힘만으로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스타 PD 출신이었으나 충무로 데뷔작인 ‘역린’으로 쓰디쓴 실패를 맛봤던 이재규 감독은 이탈리아 영화를 원작으로 한 ‘완벽한 타인’을 통해 완벽한 재기에 성공했다. 오늘은 부부 관계의 어두운 그림자와 인간의 끝 없는 욕망을 그린 영화 ‘완벽한 타인’의 촬영지를 만나러 간다.

‘완벽한 타인’의 스틸 컷.


이 영화에서 영화에서 40년 지기 고향 친구들과 그들의 배우자는 오랜만에 만난 저녁 모임에서 식사 도중 휴대폰으로 날아드는 모든 전화·문자·e메일을 공개하는 게임을 시작한다. 이야기의 특성상 대부분은 실내에서 극이 진행되는데 주인공들의 소년 시절을 묘사한 첫 장면은 강원도 속초의 영랑호에서 촬영됐다. 둘레 8㎞의 자연 호수인 영랑호의 이름은 그 유래가 ‘삼국유사’에 전해온다. 신라시대 화랑인 영랑(永郞)은 무술대회장이 있는 금성(지금의 경주)으로 가는 도중에 이 호수에 이르렀는데 빼어난 경관에 넋이 홀려 대회에 출전하려던 계획조차 잊고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미화되고 부풀려지기 마련인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고 가면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영랑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수려한 경치를 보여준다. 산책로에 들어서면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눈길을 끌고 물 위를 여유롭게 노니는 철새와 오리도 보인다. 시리도록 맑고 잔잔한 호수는 푸른 소나무와 하얀 자작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를 데칼코마니처럼 수면에 찍어낸다.

‘영랑호’의 맑고 투명한 수면 위로 푸른 소나무와 하얀 자작나무가 비친다.


‘속초 8경’ 중 하나인 범바위와 관음암 등의 기암괴석은 ‘용(龍) 그림을 완성하는 눈동자’처럼 압도적인 풍경에 단단한 마침표를 찍는다. 호수 주변에는 영랑호를 내려다보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리조트들도 자리한다. ‘완벽한 타인’에서 어린 시절의 주인공들은 영랑호가 바다인지 호수인지를 놓고 다투는데 실제로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 호숫가를 거닐다 보면 인간의 이중성과 어두운 욕망을 그린 영화의 문을 여는 장소로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간이 넉넉하면 영랑호에서 동쪽 끝 바다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한 장사항도 둘러볼 만하다. 소형 어선들이 드나드는 포구인 이곳은 해마다 여름이면 ‘오징어 맨손잡기 축제’가 열리는 등 어촌 체험마을로 유명하다.

‘영랑호’를 찾은 여행객들이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다.




‘완벽한 타인’에서 수현(염정아)은 남편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사람이었네…”라고 울먹인다. 재미로 시작한 게임은 이렇게 수습 불능의 사태로 치닫고, 등장인물들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한다. 가장 강력한 사랑의 끈으로 묶인 부부조차 무지와 불신의 늪을 허우적대는 관계로 묘사한 이 영화의 냉소적인 세계관은 어쩔 수 없이 관객을 복잡한 상념에 빠트린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영랑호’의 억새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는 ‘완벽한 타인’들뿐인 것일까. 오랜 세월 헤맨 끝에 마침내 ‘반쪽’을 찾았는데 왜 ‘나의 당신’은 알다가도 모르겠고, 닿을 듯 말듯 붙잡히지 않는 것일까.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이 새어나오는 찰나, 석호(조진웅)가 수화기 너머로 딸에게 건네는 조언은 축 처진 우리의 어깨를 위로하듯 다독이고 한 번뿐인 인생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용기를 북돋운다. 입대를 앞둔 남자친구와 지방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딸을 향해 아빠는 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사려 깊은 말투로 속 깊은 진심을 전한다. 이 별것 아닌 얘기가 딸은 물론 영화를 보는 우리의 마음도 함께 어루만진다. 그래, 맞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무수한 물음표를 기쁨의 느낌표로 바로 세우는 정답은 뜻밖에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든 가족이든 ‘너를 다 안다’는 착각은 내려놓기. 상대의 공간을 인정하되 상대의 아픔에는 철저히 공감하기. 사는 게 고달파 지쳐 쓰러질 때는 얼른 다가가 힘껏 일으켜 세우기. ‘완벽한 타인’과 더불어 사는 우리가 늘 가슴에 품고 숙지해야 할 수칙들이다. /글·사진(속초)=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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