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개입’ 의혹 등으로 기소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구속 33일 만에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심문을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검찰에 대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보석 심문기일에 직접 출석해 강제징용 사건 재판개입 의혹 등 재판장이 묻는 자신의 혐의를 전부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그러면서 검찰이 사실을 왜곡하며 막무가내 수사를 하고 있다고 무려 13분 간 재판부에 항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형사적으로 별문제 없다는 법원 자체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목표 의식에 불타는 검사 수십 명을 동원해 법원을 이 잡듯 샅샅이 뒤졌다”며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쪽의 공소장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검찰이 법원의 재판 과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며 “조사 과정에서 내가 진술한 것이 실제 취지와 달리 반영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또 앞으로 있을 재판에서 법률가인 자신이 앞장서 적극 변호 논리를 만들 전략임을 암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내 재직 기간에 있었던 모든 일이 대상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것은 변호인도 모를 것”이라며 “다만 책 몇 권을 두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20만여쪽의 증거 기록을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측이 조사 과정부터 영장실질심사 때까지 반복했던 주장을 되풀이하고만 있다”며 보석 반대 의견을 제기했다. 검찰은 “구속 영장이 발부된 뒤 구속 사유에 아무런 변동이 없다”며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이 대법원장 때 정비한 영장 제도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11일 47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은 8일 만인 19일 ‘불구속 재판 원칙’을 내세우며 법원에 보석 청구서를 제출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보석 여부는 이르면 이번주 내로 결론이 날 예정이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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