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70년 전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북미 정상이 마침내 만찬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협상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는지 초반에는 경직되고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구면인 양측은 만찬장에서는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북미 양국, 나아가 한반도 전체의 명운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만남의 시작점인 만큼 치열한 탐색전을 펼쳤을 것으로 점쳐진다.
먼저 운을 뗀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27일 오후6시30분(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레전드메트로폴호텔에서 열린 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 후 “이런 훌륭한 회담, 상봉은 (트럼프) 각하의 남다른 통 큰 정치적 결단이 안아온(가져온) 일”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사방에 불신과 오해의 눈초리도 있고 적대적인 낡은 관행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 했지만 그것들을 다 깨버리고 다시 마주 걸어 260일 만에 하노이까지 왔다”고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면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 인내가 필요했던 기간이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고민·노력·인내’와 같은 단어를 써가며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260일간 교착상태에 빠졌던 비핵화·상응조치 진척상황에 대한 아쉬웠던 심경을 솔직하게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김 위원장은 “모든 사람이 반기는 훌륭한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결과·확신·최선’이라는 키워드로 회담 성공에 대한 적극적인 의욕을 드러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다시 만나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회담 회의론을 의식한 듯 “더 빠른 진전을 기대하는 일부 시각도 있었지만 1차 회담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며 “바라건대 이번 정상회담이 1차 때와 동등하거나 더 대단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장 큰 진전은 북미관계가 개선됐다는 것”이라며 “북한은 어마어마하고 믿을 수 없는 무한한 경제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굉장한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라며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돕기를 고대한다. 우리가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과 북한의 역량을 치켜세우면서도 ‘밝은 미래’를 환기시키며 과감한 비핵화 결단을 에둘러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서 양 정상은 통역만 배석한 채 단독정상회담을 가졌으며 6시50분께 만찬 테이블로 이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제 관계는 매우 특별하다”고 말했고 김 위원장 역시 “아주 흥미로운 대화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이날 김 위원장의 면전에서는 비핵화 결단을 대놓고 촉구하지 않았지만 이에 앞서서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꺼내 들며 북한을 압박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만찬을 불과 약 2시간 앞두고 “미국과 베트남 정상이 FFVD, 자유롭고 열려 있는 인도태평양을 향한 지속적 진전의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트윗을 날렸다. 북한이 극히 꺼리는 FFVD로 비핵화를 강하게 촉구하고 ‘인도태평양’을 언급해 남중국해에서 영향력 확장을 노리는 중국에도 동시에 견제구를 날렸다. 백악관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미·베트남 정상이 FFVD를 향한 지속적인 진전의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을 북한의 ‘본보기(example)’로 제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11시 주석궁에서 응우옌푸쫑 국가주석과 양자회담을 열어 “나는 어젯밤 에어포스원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공사 중인 모든 건물을 봤고 베트남이 얼마나 번영하는지 봤다”며 “베트남은 훌륭한 생각을 하면 북한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짜 본보기”라고 말했다.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만찬 전 베트남과 정상회담을 한 것은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펼쳐질 잠재적 미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노이=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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