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나이에 고문과 핍박을 견디면서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은 유관순의 삶이 고아성의 숨결로 되살아났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위인이지만,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1년, 우리가 몰랐던 열일곱 유관순의 이야기란 점이 배우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느 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방문한 조민호 감독은 유관순의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슬프지만 당당함을 담고 있는 눈빛에 뜨거운 울림을 느낀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이후 역사관 내부에서 ‘여옥사 8호실’을 방문한 조민호 감독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만세를 외친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고아성은 100년 전, 유관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실제 유관순이 했을 고민과 번뇌를 상상하며 한 땀 한 땀 유관순을 그려냈다. 특히 고문으로 거의 먹지도 못하게 된 유관순을 촬영할 당시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열흘을 금식하며 유관순이 느꼈을 고통을 직접 느끼려 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고아성은 “매일 같이 기도하듯 연기에 임했다” 며 “배우로서 크고 소중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27일 개봉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보다 인간적인 유관순 열사에 대해 담는다. 일대기가 아닌 감옥에서의 일년이라는 시간을 다룬다. 고아성이 이번 작품 출연을 수락하고 가장 처음에 했었던 일은 멀리 있던 유관순 열사님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유관순의 삶을 공감하며 연기한 배우 고아성은 “유관순 열사님을 생각하면 존경이나 성스러움 이외에 어떤 감정을 감히 느껴본 적이 없다. 반면 이 영화는 인간적인 부분이 많다“고 털어놨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게 소원이었지만 막상 실존 인물를 다룬 영화 제안이 오니까 기분이 남달랐다. 위대한 열사만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표현해야됐기 때문에 다가가는 과정이 겁도 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조민호 감독과 첫 미팅 후 엄청난 신뢰를 느끼고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첫 미팅 당시 조민호 감독님이 제게 ‘어떻게 보면 그것도 생애일 수 있다. 행동이 아니라 내면에 있었던 순간들을 축약한 영화’라고 말씀해주셨다. 매일 같이 기도하듯 연기에 임했던 것 같다. 촬영이 끝나고 숙소 돌아와서 생각하면서 기도하던 생각이 나면서 울컥했다. 유관순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고 싶었다. 정말 이번 작품은 마음을 전하는 느낌이었다”
유관순 열사뿐 아니라 8호실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꼭 영화로 만들어지길 원한 고아성. 작품은 독립운동가이기 전, 열일곱 소녀였던 유관순의 감정과 심리 변화, 그리고 서대문 감옥 ‘8호실 여성들’과 연대하는 유관순의 모습을 담아내며 당당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고아성은 ‘유관순 이야기’라는 부제 뿐 아니라 ‘8호실 이야기’라는 부제도 더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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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들 한 명만을 조명하지 않는 영화이다.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항거’를 통해 그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는 걸 많은 관객들이 느끼셨으면 좋겠다.”
유관순은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는 서대문 감옥에서 일제의 고문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자유란, 하나뿐인 목숨,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는 것!”이라 외치며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유관순 열사를 단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충직하다’는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렇게 자기가 믿는 것을 실천하는 분이 유관순이었다. 고아성은 “인간적인 의지, 끝내 놓지 않는 신념도 있다”고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배우는 리더의 신념과 고민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접근했다.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리더들 역시 약해질 때가 있었고,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을 터. 고아성은 “열사도 눈물 흘리고 후회도 하며 홀로 갈등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열사가 8호실 동지들과 함께 있을 때와 홀로 남겨졌을 때 다른 얼굴로 보이길 바랐다”며 연기의 포인트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렇게 한 명의 청춘이 겪었던 당대의 어려움, 삶 자체의 시대적 고민을 가진 유관순이 탄생했다.
‘오빠 생각’, ‘우아한 거짓말’ ‘뷰티 인사이드’ 등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은 연기력을 선보여온 고아성은 ‘괴물’, ‘여행자’, ‘오피스’를 통해 칸영화제에 무려 세 번의 초청을 받아 명실상부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고아성이 꿈꾸는 이상은 연기를 위해 자신의 삶을 다 쓰고 싶은 배우이다. 그는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오면서 제 나름대로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허수경 시인의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라는 산문집에 ‘유물은 냄새가 없고 질감만 있다’는 내용이 있다”며 “그 구절처럼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질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고흐가 한 말을 우연히 접했어요. ‘나 이상으로 실재하는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해 내 삶을 다 써도 좋다’고. 제가 연기하는 이유와 상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늘 연기에 임해요”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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