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서명에 실패한 양국이 회담장 밖에서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8일 기자회견에 북한은 1일 새벽 전격 기자회견을 통해 반박했고 이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나서 북한의 말을 재반박했다. 양국 정상이 만나 합의에 실패하고, 이어서 실무진들의 장외 난타전이 이어지면서 향후 북미 간 빠른 시일 안에 실무협상을 시작하는 등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 앉기는 힘들어 보인다.
◇美 “北, 전면 제재 해제 요구” vs 北 “제재 일부 해제 요구”=우선 28일 베트남 하노이를 출발해 필리핀을 방문 중인 폼페이오 장관은 1일 “북한이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제재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는 이날 새벽 깜짝 기자회견을 연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발언과 배치되는 것이다. 리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중에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美 “北, 영변 관련 무엇 내놓을지 불분명” vs 北 “영변 전체 폐기”=또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영변 핵 시설과 관련해 무엇을 내놓을 준비가 됐는지 분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변 핵 시설 중 전체를 폐기할 것인지, 사찰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이보다 헐거운 참관 하에 폐기하는 것인지, 사찰의 주체가 미국 전문가인지 국제 기자단 수준에 그칠 것인지 등에서 북한이 준비된 것 같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리 외무상의 발언과 결이 다르다. 리 외무상은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라며 영변 핵시설 전체의 영구적 폐기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도 리 외무상의 주장과 다른 말을 했다. 그는 1일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를 직접 타깃으로 한 제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제재를 해제해주는 조건으로 영변 핵 시설 일부를 폐쇄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리 외무상은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영변의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폐기하겠다”고 했다지만 미국은 “북한이 내건 것은 영변 핵 시설 일부 폐쇄”라고 반박한 셈이다.
◇양국 서로에 대한 비난은 자제...文대통령 역할론 주목북한 관영매체는 28일 북미 협상에서 합의문에 서명을 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1일 미국에 대한 비난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28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계속 ‘내 친구’라고 표현함으로써 북미 양국이 과거와 같은 첨예한 대결구도로 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장외에서 진실 게임을 벌이면서 이른 시일 내에 실무협상이 재개되는 등 북미 협상이 재개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로서의 어깨가 한층 무거워지게 됐다. 문 대통령은 1일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이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우리 정부는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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