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았다. 일제의 불법적 통치에 저항해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온 겨레가 떨치고 일어났던 그날을 생각하면 우리 선조들의 기개와 애국심에 큰 자긍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왜 우리가 일제에 무기력하게 합병돼 험한 고초와 수모의 36년을 겪어야 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당시 정치의 난맥상이 극에 달해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탓이지만 과학기술자의 한사람으로서 국가의 영욕과 과학기술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과학기술의 선진국이 빈곤에 시달리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선진국가의 결과물이냐, 아니면 선진국가로 가는 추동력이냐를 자문해본다면 답은 둘 다일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대적 투자가 이뤄지려면 어느 정도 국가의 기틀이 선 나라이어야 할 것이고 이렇게 투자된 과학기술은 그 나라의 발전에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다시 돌아와 조선 후기의 역사를 생각해볼 때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전력 투자했다면 오히려 일본과 나란히 당시의 선진국이 돼 한일합병을 원천적으로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우리 조선조는 과학기술과 관련해 역량이 없는 나라가 결코 아니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1983년 일본이 편찬한 ‘과학사 기술사사전’은 15세기 1400∼1450년 기간의 세계 주요 과학기술 업적으로 한국 29건, 중국 5건, 일본 0건, 동아시아 이외 지역 28건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가장 우수한 문자로 전 세계가 인정하는 한글을 필두로 자동물시계인 자격루, 표준 해시계인 앙부일구, 초 단위로 일식을 예측하는 칠정산내외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과학사에 빛나는 발명이 이뤄졌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조선의 과학기술 역량이 국가적 관심사로 계속 이어져 발전하지 못하고 시간이 갈수록 과학기술의 최빈국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반대의 길을 간 일본의 식민지가 돼 36년의 고통과 수모를 겪게 된다. 국가를 되살리기 위해 떨쳐 일어난 동학군이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개틀링 기관총에 무참히 스러진 것이 그 당시 기술력의 격차와 그것이 결정한 역사의 갈림길에 대해 웅변한다.
돌아보면 6·25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도 우리가 초고속으로 성장해 이제 선진국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그 바탕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집념 어린 투자와 노력이 있었다. 그동안 극심한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도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져 올해 정부연구개발 투자비 20조원 시대가 열렸다. 삼성과 LG 등이 세계 최고의 첨단기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국가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데 이는 기업이 잘한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력 전반에 힘입은 바 크다 할 수 있다.
이렇게 과학기술에 대한 대대적 투자가 이뤄지는 한편에서는 우리가 갈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투자한 만큼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실망감으로 급격한 처방전들이 논의되고 있다.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역사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과학기술이 궁극적으로 국가사회의 전체 구성원에게 가져올 영욕을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찾기 위해 고심을 거듭해야 할 사안이다.
우리 과학기술자들도 국가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지 더 철저히 자각할 필요가 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렇게 막대한 자원이 과학기술 분야에 투입되고 있는 것 자체가 우리를 인정하고 큰 기대를 갖고 있다는 방증이 아닌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의 사명과 역할을 다시 인식하고 국가사회의 영광을 위해 달걀 대신 회중시계를 삶는 과학기술자의 참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다만 우리를 둘러싼 연구관리체계가 ‘열심히 일한 당신, 시계 값을 물어내라’고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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