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인 A(26)씨는 지난해 봄 고향에서 사범대를 졸업하자마자 비전문취업 비자인 고용허가제(E-9)를 이용해 한국에 들어왔다. 경기도 김포에 있는 한 금속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그가 받는 월급은 약 210만원. 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받는 급여보다 약 5배나 많다. A씨는 “태국 교사 급여는 초봉 1만3,000밧(약 46만원) 정도인데 생활비로도 부족해서 부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교사들 사이에 차라리 한국 공장에 가서 일하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지난달에 태국에 잠깐 들어가 결혼식을 올린 후 부인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A씨 부인은 외국인 계절근로자 비자(C-4)로 입국해 경기도 포천시의 한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A씨는 “한국에서 3년 정도 더 일한 후 태국에 돌아갈 것”이라며 “부인의 비자는 3개월용이라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다른 비자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현지와 임금 차이가 수배 이상 나기 때문이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들은 국내에서 목욕탕 세신사, 공장·건설현장 기술자, 마사지숍, 지방 농장 등 합법·불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일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국내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것도 한몫한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등의 압박으로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욕구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도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가 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경기도 부천의 한 재활용 쓰레기 수거회사에서 일해온 네팔 출신 프렘 아디카리(33)씨도 한국에 온 지 5년째다. 대학에서 네팔어교육을 전공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버는 돈은 일부는 네팔 가족들의 살림에 보태고 일부는 본인 앞으로 저축하고 있다. 프렘씨는 “네팔에서 버는 돈으로는 가족들이 먹고사는 것만도 벅차다”며 “가능하면 자격증을 따서 장기비자를 받고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렘씨의 비자인 비전문취업은 각 나라별 인원이 제한돼 ‘로또’나 다름없다. 이 비자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취업이 허용되지 않는 단기체류 자격으로 들어와 눌러앉는 것이다. 지난해 증가한 불법체류자 10만4,085명 중 9만6,904명이 이 같은 단기비자 입국자였다. 특히 지난 한 해 불법체류자는 10만4,085명 늘었는데 이는 자진출국한 6만4,814명과 강제퇴거된 3만1,811명을 제외한 숫자다. 사실상 한 해 20만여명의 불법체류자가 생겨난 것이다.
지난달 20일 외국인 성매매 단속에 나선 경찰청 풍속4팀 경찰들과 함께 찾은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주택가에서는 단기체류 자격으로 들어와 불법취업한 태국인 여성들이 대거 적발됐다. 경찰은 단속 나왔음을 밝히고 다섯 개 방 중 하나의 문을 열었다. 방 안에 있던 나체 상태의 두 남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닥에는 남성용 피임기구가 나뒹굴었다. 현장에서 발각된 태국인은 5명. 이 가운데 한 명은 마사지사고 나머지는 성매매를 했다. 이들을 어디서 고용했느냐고 업주 김모씨에게 묻자 “인터넷에 있는 브로커에게 소개받았다”며 “일을 시작한 태국인이 친구를 데려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가 간 비자면제협정인 ‘무사증’ 제도를 통해 들어왔다. 비자 없이도 한국에 90일간 머물 수 있다. 김씨는 이들은 체류기간이 아직 남아 불법체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기자가 태국인들의 캐리어 가방에 부착된 항공기 수화물표를 확인해보니 입국일이 각각 지난 2018년 12월30일, 2019년 1월15일이었다. 한 태국인에게 한국이 처음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이러한 경로로 입국해 불법취업하는 태국인 여성의 일부는 성매매를 하고 대부분은 마사지 일을 한다. 최근 태국마사지 가격이 1시간에 2만원대까지 떨어진 것도 이 같은 영향이다.
실제로 취업 비자를 갖춘 외국인 수는 2014년 말 61만7,145명에서 지난해 말 59만4,991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앞선 사례처럼 단기체류 자격으로 들어와 불법취업을 하거나 체류기간이 끝나고도 숨어서 일하는 외국인은 더 많아졌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태국인의 70.1%(13만8,591명)는 불법체류 중이다. 2014년 말에는 47% 수준이었다. 그다음으로 △카자흐스탄 37.2%(1만1,413명) △몽골 34.4%(1만5,919명) △필리핀 21.6%(1만3,020명) △베트남 21.4%(4만2,056명) △러시아 20.2%(1만906명) 순이다. 이 같은 불법체류자 대부분은 노동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불법체류자가 스스로 나가면 입국규제를 면제해주는 ‘특별자진출국기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른 정부부처와 함께 건설현장, 유흥·마사지업 등에 대한 단속도 강화했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불법취업·체류 신고가 들어와도 현장에 출동하는 데까지 한 달 이상 걸리기도 한다. 결국 1월에도 불법체류자가 1,882명 증가해 전체 체류자의 15.8%까지 치솟았다. 강동관 IOM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외국인들 사이에는 고용허가제 선발을 기다리기보다 일단 들어와 불법으로 일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단속인력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으면 이 같은 흐름을 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외국인 관련 행정과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려면 불법체류에 대한 관리부터 철저히 이뤄져야 하는 것이 맞다”며 “일단 자진출국제도와 합동단속에 집중하고 추가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권형·백주연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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