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사업을 하기 위해 국가기술표준원과 농림축산식품부 등 소관부처와 협의에 들어가자 벽에 부딪혔다. 부처마다 자기 업무가 아니라며 떠넘기기에 바빴다. 한 부처는 특정 기업의 기술을 지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어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 사이 투자는 끊겼고 회사는 수억원의 손실을 떠안았다. 정식허가가 나지 않아 추가 대출길마저 막혀 생사기로에 서 있다가 올 1월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되자 문을 두드린 것이다.
당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회사 경영진의 하소연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 같은 공직사회의 책임회피로 기업들이 골탕먹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혁파를 외치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나중에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미루고 감사에 대비한 논리부터 챙겨야 한다’는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보신주의 탓이 크다.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 상용화된 사업을 놓고 심의하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규제개혁과 관련해 “소극행정이나 부작위행정을 문책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달라”고 장관들에게 주문했다. 하지만 지시만으로는 안 된다. 적극행정 면책과 인센티브 지급 등 실질적인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해석이 엇갈리는 규제가 있다면 법령을 고쳐서라도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수백번 강조해도 규제혁신은 공염불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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