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걸려보지 않으면 몰라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형벌을 받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2월 마지막 날은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다. 지난 2008년 유럽희귀질환연합회에서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과 공동 연구개발(R&D)을 위해 지정한 이 날은 희귀질환이 4년(1,460일)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2월29일처럼 드물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귀질환의 정의가 유병인구 2만명 이하(유럽은 2,000명당 1명 이하, 미국은 20만명 이하)임을 생각하면 2월29일보다 더 낮은 확률을 가진 셈이다.
현재 알려진 희귀질환은 7,000여종으로 이 중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은 10%에 불과하다. 환자가 극히 적어서 사회적 관심도 없다. 치료제를 개발하려 해도 경제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 좌초되거나 시판되더라도 매우 비싼 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희귀질환자들과 병원은 치료제의 가격을 고민할 수 있는 것조차 다행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의료기술의 한계로 인해 자신이 어떤 병을 겪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잦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희귀질환자가 자신의 병명이 무엇인지 아는 데만 평균 7.6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희귀질환자 중 약 62.2%가 잘못된 질병으로 진단받는 ‘오진’을 경험했다.
서울특별시 어린이병원 삼성발달센터 유전학클리닉 교수를 맡고 있는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은 그 원인으로 국내에 만연한 ‘5분 진료’를 꼽았다. 김 이사장은 “희귀질환을 의심하기 위해서는 가족력 등을 조사해야 하는데 현 수가 체계로는 환자가 아프다는 내용을 들으면 바로 진단 및 처방까지 진행해야 한다”며 “이러한 진료 체계로는 희귀질환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1차원적인 진단 및 치료밖에 이뤄질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곳에서 유전자검사를 포함한 유전상담 서비스까지 진행하고 있는 김 이사장은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대로 진행하려면 한 환자당 한 시간 이상의 상담시간이 필요하다”며 “현 수가 체계에서는 대학병원에서는 불가능한 서비스”라고 덧붙였다.
희귀질환자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경제적인 부담이다. 다행히 약제가 있더라도 급여화를 받지 못하면 환자의 부담이 크다. 몸속의 낡은 세포를 없애는 효소가 유전자 이상으로 결핍되는 ‘고셰병’의 경우 1년간 환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수천만원에 이를 정도다. 환자들은 이 때문에 의사에게 실제 자신의 병 대신 급여 적용이 되는 비슷한 다른 병을 진단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의 한 교수는 “환자가 의사를 찾아와 특정 질병 코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 의사 중 이런 요구를 받아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는 국내 희귀질환자들의 진단 및 현황을 왜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희귀질환이 아닌 만성 난치성 질환에 대한 법률이 적용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6년 제정된 희귀질환관리법에는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 질환에 만성 신부전, 파킨슨병 등 희귀질환이 아닌 질환이 포함돼 있다. 2001년 제정될 당시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묶였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있지만 쉽게 고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이사장은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사업으로 정부가 지출하는 금액의 70%가 만성 신부전증 등 희귀질환이 아닌 질환에 집행되고 있다”며 “신부전으로 희귀질환자에 등록된 이들만 5만명이 넘는다는 것은 잘못된 정책의 한 예”라고 강조했다. 만성질환으로 체계적인 관리를 해야 하는 병이라는 것이다.
희귀질환을 전염병으로 오인하거나 사회생활 어려운 중증장애인으로 치부하는 등 사회적 편견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희귀질환의 80%가 유전성인 탓에 결혼과 출산도 금기시된다. 서울특별시 어린이병원에서 만난 한 보호자는 “첫 아이가 아프다 보니 둘째 아이를 갖기조차 겁난다”며 “둘째가 아프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고 혹시나 아프지 않더라도 첫째의 치료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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