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코언의 ‘트럼프 비리’ 폭로로 벼랑 끝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른 무역전쟁 채비에 들어갔다. ‘러시아 커넥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핵 기밀 거래, 민주당의 전방위 수사 등 각종 악재들로 내년 재선 시나리오에 경고등이 켜지자 분위기 반전카드로 인도·터키를 무역전쟁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4일(현지시간) 터키와 인도가 일반특혜관세제도(GSP)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들의 무관세 특혜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미 의회와 당사국에 고지된 후 60일 이내 변화가 없으면 대통령 선언으로 발효된다.
USTR 성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 의회에 서한을 보낸 직후 나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인도가 미국에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 접근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며 인도를 GSP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1974년 빈곤국이 무역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GSP를 도입해 120개 개발도상국으로부터 3,500개 상품을 무관세로 들여왔다. USTR는 작년 4월부터 인도가 미국 무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무역 장벽을 시행하고 있다며 인도의 GSP 지위를 중단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터키의 경우 USTR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증가하는 등 더 이상 GSP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으로 2017년 기준 GSP 최대 수혜국인 인도(56억달러)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아제이 사하이 인도수출협회(FIEO) 회장은 로이터통신에 “농·수산물, 수공예품 등 노동집약 수출품들의 미국 수출이 타격을 입게 됐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중국, EU 등에 이어 인도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 목표물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돼왔다. 2017년 273억달러(30조7,262억원) 등 미국이 인도와의 상품·서비스 무역에서 매년 수백억달러 적자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때린 뒤 인도가 2억4,000만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고 맞서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 최근 인도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전자상거래법을 개정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아마존과 월마트에 위협을 가한 것도 이번 결정의 배경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보수 진영의 연례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인도는 관세가 매우 높은 나라”라면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인도 상품에 똑같이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전쟁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수입산 티타늄스펀지에까지 고율 관세를 부과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 상무부는 이날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티타늄 스펀지의 수입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지난해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가 부과됐을 때 근거가 된 법이다. 상무부는 이 법에 따라 지난해부터 수입산 우라늄을 조사 중이며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조사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티타늄 스펀지는 군용 항공기, 우주선, 위성, 해군 전함, 미사일, 탄환 등 광범위한 전략 물품에 사용되는 금속이다. 미국은 티타늄을 티타늄 스펀지로 처리하는 시설이 미국 내에 한 곳밖에 없고, 티타늄 스펀지 소비의 60%를 수입에 의존한다고 우려해왔다.
하지만 2017년 미 무역위원회(ITC)가 자국 업체에 무해하다고 판단한 수입산 티타늄스펀지에 대해 또 안보 영향을 조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로이터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냉전시대 산물 무역확장법 232조가 트럼프 행정부에서만 다섯번째 적용됐다”고 지적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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