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투자를 결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물건을 제시간에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시장에서 잘 팔릴 것인지, 얼마에 팔고 비용은 얼마를 들여야 수지타산이 맞을 것인지, 다달이 들어가야 하는 비용은 제때 조달할 수 있을 것인지, 투자는 제때 받을 수 있을지 등등 수없이 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해도 고려할 요소들은 많다. 주방과 홀에 몇 명을 두고 월급은 얼마를 주며 가격은 얼마로 해야 할지, 주위에 다른 식당들은 장사가 잘 되는지, 주위에 비슷한 업종은 없는지 등등이다. 심지어 집에서 새로이 냉장고를 구매할 때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집안 형편에 당장 바꿔야 하는 건지, 얼마짜리로 할건지, 할부로 할건지, 그렇다면 앞으로 몇 달 동안 가계부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말이다.
이러한 결정이 어려운 것은 대부분 미래에 생길 경제변수들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언제 어떠한 변수가 등장해 경제 상황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투자 결정은 항상 어렵다. 생각에 생각을 하고 몇 날을 아니 몇 달을 고민하게 된다. 전부 내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기업의 신규투자나 식당운영이나 냉장고를 살 때나 전부 자기 돈이 들어갈 때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게 된다. 특히 투자가 실패할 때 돌아올 불이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투자 실패는 사업 실패로 이어지기 십상이고 이는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까지 경제 전쟁의 패잔병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려왔던 사회적 위치와 지위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류·삼류 시민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불확실성하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결정은 특히 내 돈이 들어가는 투자 결정은 어려운 것이다.
최근 24조원이 넘는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다고 해서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대규모 재정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조사를 통해 재정사업의 신규투자를 우선순위에 입각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예산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운영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는 최소한의 견제장치이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름아래 이런 견제장치가 무용지물이 됐다. 이번 사업 중에는 당장 들어가는 건설비용뿐 아니라 앞으로 시설의 유지보수를 위해 계속해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야 하는 사업이 많다. 정권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연 얼마나 이용할지 모르는 공항을 짓는다고 길을 놓는다고 철도를 만든다고 지역이 발전할지도 의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할 일이다. 당장의 효과를 위해 묻지마 식 투자는 안 된다. 내 돈으로 하는 일이었다면 경제적 타당성을 무시하고 이런 투자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실패하면 길거리에 나앉기 때문이다. 남의 돈으로 하는 사업이라 이렇게 눈 깜작할 사이 이 큰돈을 쓰는 사업을 결정해버린 것이다.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이나 지역주민들이나 자기 돈 들어가는 일 아니라고, 남이 내는 세금으로 한다고 정말 너무들 한다.
재정학에서는 공평한 조세정책을 위해 수익자부담원칙을 강조한다. 편익을 받은 자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공평한 원칙이다. 비용을 내는 자와 혜택을 보는 자가 다른 정책을 수립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이 정부에서는 수익자부담원칙에 반하는 정책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서울시에서 청년수당으로 50만원씩을 지급하겠다고 하고 월급 200만원 미만 비정규직·특수고용 노동자에게 국내 여행경비를 25만원씩 지원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 국민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를 이번 정부 임기 내에 시행하겠다고 천명했다. 어떻게 비용을 조달할 것인지, 돈 낼 사람의 의향은 물어봤는지 전혀 말이 없다. 내 돈이 들어가는 거라면 이러한 공약을 마구 남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돈 주고 사업해본 적 없고 남의 돈으로 생색만 내본 분들이 내리는 결정답다. 내 돈과 남의 돈은 이렇게 차이가 크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