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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좋은 의도, 나쁜 결과

강사법 개정도 최저임금 인상도

모두 누군가에 도움 주려 했는데

결국엔 그들의 일자리만 없앤 꼴

현장과 더 소통하고 배려했으면





올해 고려대에 입학한 지인의 딸은 1학기에 이수할 과목으로 고작 8학점을 신청했다.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원이 이미 차 신청 자체가 불가능했다. 신청 경쟁이 치열해지자 일부 학생은 기계적으로 수강 신청을 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 수강할 권리를 얻은 뒤 이 수강권을 원하는 학생에게 팔기까지 했단다. 지인의 딸이 전공과목도 제대로 신청하지 못한 것은 학교가 개학을 앞두고 200여개의 강의를 줄였기 때문이다. 오는 8월 개정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시간강사를 미리 해고한 것이다. 개정 강사법에 따르면 시간강사 임용계약의 단위는 기존의 한 학기에서 1년으로 늘어나고 재임용은 신규 임용을 포함해 3년까지 보장된다. 3년이나 고용을 유지하려면 인건비가 많이 드니까 법 적용 전에 쳐낸다는 이 발상은 지난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뒀을 때도 있었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법 시행 직전 많은 기업은 정규직 전환이 부담돼 고용한 지 2년도 되지 않은 노동자를 대량으로 해고했다. 강사법은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한 법이고 비정규직보호법은 말 그대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둘 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개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누군가를 해고하는 빌미가 됐다. 준 사람은 약을 줬는데 받은 사람은 독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이제껏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수단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최저임금을 올려 노동자의 소득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소비가 증가하고 이는 기업의 생산을 늘려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을 올리는 것은 경제 성장 이전에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저임금 노동자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올린 최저임금이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면 뭔가 잘못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4·4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이 123만8,200원으로 전년보다 17.7% 줄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줄어든 탓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할 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역효과를 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적당한 속도로 오르면 약이지만 급격하게 뛰면 독으로 변할 수 있으니 세심하게 다뤄야 했다는 얘기다.

의도는 좋은데 결과가 나쁜 일들이 이 정부 들어 특히 많이 보인다. 정부가 서민들의 금리 부담을 덜어준다며 법정 최고금리를 낮춘 것도 한 사례다.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면 저신용자들이 낮은 금리에 대출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현실을 보면 저축은행이나 대부 업체에서도 밀려 사채시장에서 급전을 구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미국의 신발회사인 톰스는 고객이 신발 한 켤레를 살 때마다 한 켤레를 기부하는 이른바 ‘원 포 원(One for One)’으로 유명하다. 회사를 설립한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다 많은 아이들이 맨발로 다니는 현실을 목격하고 원 포 원을 구상했다. 원 포 원으로 신발을 기부받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해졌을까. 손드라 시멜페니크라는 사람이 조사해보니 톰스의 좋은 의도와 달리 아프리카에서는 기부받은 신발이 오히려 현지 신발산업의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역효과를 냈다. 톰스는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이후에는 기부할 신발을 현지에서 생산해 일자리도 창출하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하고 있다.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었다. 개정 강사법을 시행하는 데 소요되는 3,000억원의 재원을 국회가 예산에 반영했으면 지금 대학교에서 이런 난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현실을 반영해 조금만 조절했어도 골목상권이 이렇게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만 더 현장과 소통하고 배려했으면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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