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이상한 레코드도 다 있네, 기술이 거꾸로 간 것 아냐?’ 1979년 3월8일, 필립스사가 에인트호번 본사에서 발표한 콤팩트디스크와 CD플레이어 시제품(Pinkeltje)을 접한 중장년층의 반응이다. 그럴 만했다. 영락없이 ‘작고 번쩍이는 레코드(LP·Long Play)판’이었으니. 더러는 ‘바늘 없이는 작동하는 작은 전축(電蓄·gramophone)’으로 여겼다. 외양상의 차이는 딱 한 가지. 이름처럼 작았다. LP판의 지름이 30.2㎝, ‘도넛판’으로도 불리던 소형 LP판이 17.2㎝인 반면 CD의 지름은 11.5㎝였다.
올드팬의 착각과 향수를 불러일으킨 필립스사의 CD 발표는 저장 매체의 혁명적 변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불과 닷새 뒤 소니사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오디오공학회(AES)를 통해 ‘디지털오디오디스크’를 내놓았다. 기술의 내용과 수준은 두 회사가 엇비슷했다. 필립스의 발표를 경쟁자에 앞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따내기 위한 기습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치열하게 경쟁했던 필립스와 소니는 이후 머리를 맞대고 CD 표준을 만들어냈다. 국제 규격을 마련하기 위해 손잡은 두 회사의 제휴 전략은 현대 경영학의 모범 사례로도 꼽힌다.
CD는 장점이 많았다. 소니의 ‘워크맨’이 가져온 휴대용 오디오기기의 총아였던 카세트테이프가 갖고 있던 열이나 습기에 약하고 테이프가 늘어지며 음질이 좋지 않다는 단점을 뛰어넘었다. 물론 일부의 불만도 없지 않았다. 알려진 대로 원음에 가까울 정도로 음질이 좋지 않다는 것이 훗날 사실로 밝혀졌다. 두 회사가 초기 규격을 만들며 인간의 가청 영역을 낮게 잡은 실수를 저지른 탓이다. 전문가들의 의구심 속에서도 세계적 지휘자 카라얀의 조언을 받으며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담은 첫 출시 상품은 대박을 터뜨렸다.
한국에서는 극히 일부만 CD플레이어를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 시판 가격이 16만8,000엔. 우리 돈으로 50만원을 넘었다. 은행과 대기업의 대졸 사원 초봉(25만원 안팎)의 두 배 수준. 컬러TV 방영 허용 2년 차에 들어서며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컬러TV 2대 값과 맞먹었다. 누적 판매량을 따지면 대기권에 도달한다는 CD로 두 회사는 돈방석에 앉았다. 초기에만! 끊임없이 새로운 기기와 소재가 쏟아지고 종국에는 MP3라는 새로운 전달매체가 등장하며 CD의 시대도 저물었다. 권력도 기술도 비켜가기 어려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