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단체가 선천성 심장병 수술에 필요한 재료인 조혈관 공급을 중단한 미국 업체를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8일 성명을 통해 “환아들의 생명을 사지로 몰고 있는 고어(GORE)사의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고어텍스로 유명한 고어사는 소아 심장 수술용 인조혈관을 전 세계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2017년 9월 사업을 철수했다.
연합회는 “고어사가 공급하는 인조혈관은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의 수술에 대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치료재료”라며 “공급중단 사태는 그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처사”라고 비판했다.
고어사가 우리나라에서 철수한 주된 이유는 낮은 가격과 제조 및 품질관리(GMP) 제도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알려졌다. 고어사의 인조혈관 공급 단가는 미국과 중국에서의 각각 80만원, 140만원가량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40만원대로 낮은 수준이었다.
고어사의 철수가 결정되면서 어린이 심장 수술을 하는 주요 병원들은 재고 확보에 나섰지만, 올해 초부터 재고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어린이용 인조혈관 재고가 없어 수술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이달 병원에서 3차 수술을 받기로 한 3살 남아의 수술날짜는 무기한 연기됐다. 이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렸지만, 보건당국도 현재로서는 해결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재고가 남아있는 병원들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달 대체 수입업체를 선정해 고어로부터 인조혈관을 수입할 수 있도록 했다. 보건복지부도 희귀질환 수술에 꼭 필요한 희소·필수 치료재료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상한 가격을 인상해 주는 별도 관리 기준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고어사가 제품을 국내에 공급하기로 결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현재 고어사는 국내에 제품 공급을 할지에 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오태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은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2년 가까이 공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뒤늦게 나선 것도 문제지만 현재까지 공급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고어사의 행태도 반인륜적”이라고 토로했다.
오 이사장은 “학회 차원에서는 고어사에 인조혈관을 계속 공급하지 않으면 의류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입장까지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어사는 논란이 가열되자 입장문을 통해 “여러 우려와 관련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제한적으로라도 고어사만 제공 가능한 생명과 밀접한 의료 기기(소아용 인조혈관)를 한국시장에 공급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관련 결정이 확정되면 정부 관계자와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호경기자 khk0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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