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파탄과 ‘한 나라 두 대통령’이라는 초유의 정치불안에 휩싸인 베네수엘라에 사흘째 대규모 정전까지 겹치면서 정국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정전으로 일대 교통이 멈춘 것은 물론 의료 서비스가 마비돼 숨지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전 책임공방까지 더해지면서 니콜라스 마두로 현 정권과 이에 맞서는 후안 과이도 과도정부 수장은 갈수록 첨예한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다.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BBC방송 등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서는 연이어 발생한 정전사태로 투석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 15명이 숨지고 수도 카라카스의 시내 지하철도 며칠째 운행을 멈춘 상태다. 전날 카라카스 대학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가 작동하지 않아 25세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FT는 “전 국토의 96%가 암흑세계가 됐다”며 “이로 인해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해 79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최악의 정전사태에 대한 책임공방이 거세지면서 이날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는 마두로 정권에 충성하는 지지자들과 반정부 세력의 대립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지난 7일만 해도 대부분의 전기시설이 복구됐는데 또 다른 공격을 받아 시스템이 파괴됐다”며 “이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반면 베네수엘라 임시대통령을 선언한 과이도 국회의장은 마두로 정부가 지난 수년간 전력발전시설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며 마두로 정권의 무능과 부실관리로 전기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주장하며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구했다. 이날 카라카스에서는 정전사태로 격화된 반정부 시위대와 진압경찰 간 마찰도 빚어졌다.
과이도 의장은 가택연금과 수감 등으로 야권 유력 후보들이 선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치러진 지난해 대선이 불법이라며 1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현장에서 자신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언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었다. 이후 한 달 넘게 지속되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난 속에 베네수엘라에서는 대규모 ‘탈출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평균 5,000명가량이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국제사회의 행보도 분주해졌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은 재앙 수준의 혼란에 베네수엘라인들의 인권 상황을 살피기 위해 11∼22일 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오는 19일 정상회담을 갖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기 위한 공조 방안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현재 브라질의 보아비스타시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구호물자 제공을 위한 거점이 되고 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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