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째 이어진 최악의 정전 사태로 사실상 국민들의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해진 베네수엘라에 결국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연일 악화하는 가운데 미국은 현지 주재 외교관 전원을 철수시키는 등 베네수엘라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11일(현지시간) 국회 긴급회의를 소집해 “베네수엘라에 정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고 국회는 과이도 의장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국회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지난 7일부터 이어진 정전으로 피해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이도 의장에 따르면 전국 23개 주 가운데 16개 주에 전력 공급이 전혀 되지 않고 있으며 6개 주는 부분 정전 사태를 겪고 있다. 이날 비상사태선포를 위해 소집된 국회에서도 회의 시작 1시간 만에 전기가 끊겼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국제원조를 ‘외세 침투’로 규탄하며 국경 인근에 대기 중인 원조물자 250톤을 거부한 탓에 국민 수백만 명은 식량난과 식수난에 허덕이고 수십 명의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다만 베네수엘라 헌법은 재난상황 발생 시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국회의 비상사태 선포에 효력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마두로 정부는 이날 관공서와 공기업 등에 출근하지 말 것을 통보하고 휴교령을 내렸다.
과이도 의장은 또 베네수엘라가 경제난 와중에도 마두로 대통령이 정치적 파트너 국가로 여기는 쿠바에 원유를 20년간 싼값에 팔아넘기고 있다며 국제사회에 이를 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과이도 의장은 “국제사회가 이 조치에 동참해 국가비상사태 해결을 위해 긴급 투입돼야 할 원유가 반출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위터를 통해 “베네수엘라 국회가 원유의 쿠바 수출 중단을 명령했다. 원유의 쿠바 반출을 돕는 보험사와 항공사들이 이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응답했다.
한편 마두로 대통령이 대규모 정전의 원인을 미국의 전자기 공격 탓으로 돌리며 미국을 비난하자 미국은 베네수엘라 주재 외교관을 전원 철수시키는 강수를 뒀다. 올 1월 베네수엘라에 있던 외교관 대부분에게 귀국 명령을 내린 데 이어 남은 인력까지 모두 철수하라는 것이다. 미 재무부도 이날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와 거래한 러시아 소재 은행 에브로파이낸스 모스나르뱅크에 제재를 가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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