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치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국민을 참된 주권자로 받들면서 편하고 잘살게 해주는 리더가 좋은 정치가일 터인데 요즘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이유로 미국 CNN이 지난 9일 모바일페이지 헤드라인에 공개석상에 흰머리를 드러낸 시 주석을 올리면서 “그의 변모가 권력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했을 듯싶다. 중국 국가주석이 검게 염색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해온 것은 20년 넘게 지켜진 불문율로 장쩌민도 후진타오도 집단지도 체제와 10년 임기제한과 더불어 ‘염색 머리’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왔다. 하지만 지난해 시 주석은 개헌을 통해 종신집권 가능성을 열어놓을 정도로 절대권력을 확립했고 이번에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를 통해 권력의 전통적 관례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 CNN의 해석이었다.
시 주석이 종신집권의 길을 연 후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의 면모를 급속히 상실해갔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만 놓고 봐도 사드 배치를 주도한 미국에는 아무 조치도 못 하고 한국만 괴롭히다 30년 가까이 공들여 쌓아온 한중 우호관계를 무너뜨렸고 누가 봐도 중국발 요인이 있는 미세먼지 문제에서도 공동의 문제 인식 아래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과거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서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비롯한 역내 공동의 과제에 대국적 스케일로, 포용적으로 임했던 것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다. 시 주석의 독주는 중국 국민에게도 불행을 초래했다. 영구집권의 길을 닦은 데 고무된 시 주석은 은밀히 추진해야 마땅할 ‘중국 제조 2025’를 대외에 천명해 미중 무역전쟁의 빌미를 줬고 이로 인해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6.6%로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29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국민의 주권을 가로채기는 아베 총리가 시 주석보다 한 수 위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그는 지난달 28일 중의원에서 “내가 국가다”고 말했다. 귀를 의심할 만큼 황당한 발언이다. 이 말에서 일말의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것은 그간 끊임없이 민주주의에서 일탈해 국가주의를 지향해온 그의 행보와 맞물려 터져나온 언사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위안부 문제 사과 요구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기다렸다는 듯 과도한 언행을 쏟아내는 것 또한 아베 정권의 과거로의 회귀본능과 연결돼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총리가 일본을 대표해서 한마디만 하면 된다. 아니면 곧 퇴위하는 일왕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문 의장의 발언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아베까지 직접 나선다는 말인가. 심지어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송금 정지와 비자 발급 정지까지 거론했다. 언어도단일 뿐 아니라 일제시대 때 1,000여명의 조선인 징용노동자를 하루에 한두 명씩 죽어나가도록 혹사시키며 부를 축적했던 아소시멘트 가문 출신의 아소 다로가 입에 올릴 말은 아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피해자를 우롱하는 일본을 질책하기보다는 우리 법원과 문 의장의 발언을 들어 ‘외교 참사’로까지 규정하는 일각의 관점이 우리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한일 양국이 어두웠던 과거사를 속히 청산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동아시아 경제발전 등 역내의 공동과제 해결에 손을 맞잡아야 할 중요한 시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때마침 14일 고종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국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1907년 7월25일자 독일 일간지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따르면 1907년 7월 고종은 “내가 살해당해도 나를 위해서 아무런 신경을 쓰지 마라. 너희들은 특명을 다하라. 대한제국의 독립주권을 찾아라”고 ‘헤이그 특사’ 이위종과 이상설에게 말했다. 112년 전 3월 목숨을 걸고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려 했던 고종이 요즘 일본의 몰염치를 보면 어떤 심정일까.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문성진 정치부장 h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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