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주총 시즌이 돌아왔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용해 일부 기업들에 대해 적극적 경영 참여를 선언하고 그동안 주로 중소·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영 참여를 해왔던 국내 헤지펀드들이 최근에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공격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해외 헤지펀드들은 지난 2013년 7건에 불과했던 아시아 기업에 대한 경영 참여 활동을 지난해 30건으로 4배 이상 늘렸다. 이러한 해외 헤지펀드들의 행동을 고려할 때 올해 주총에서 경영권 경쟁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은 최적의 자원배분을 결정하는 효율적인 수단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경영권분쟁 시장에서의 경쟁 또한 효율적 자원배분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경쟁이 효율적인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들의 참여수단, 즉 무기가 평등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경영권분쟁 시장에는 심각한 무기 불평등의 문제가 있다. 즉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측과 이를 방어하는 측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제도적으로 매우 불공평한 상황이다. 적대적 M&A 공격수단은 매우 광범위하게 허용되는 반면 방어수단은 매우 미흡하다. 이는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해외 자본유치를 위해 경영권 공격수단을 대폭 허용한 것에 기인한다. 주식 대량소유 제한 폐지, 외국인 주식 취득한도 폐지, 국내 회사 주식 취득 시 이사회 사전 동의요건 폐지 등이 당시 이뤄진 조치들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경제환경이 급변했지만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을 위한 제도적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우리 기업에 필요한 효율적인 방어수단이 있음에도 제도적으로 금지돼 있다 보니 자사주 취득 및 소각, 지분 매입 경쟁 등 고비용 수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투자와 고용 확대에 들어갈 기업 투자 자금이 경영권 안정화를 위해 소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말 기준 28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보유한 24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투자로 돌린다면 32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지금이라도 경영권 경쟁자 간 최소한의 무기균형 원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해외 주요 선진국이 도입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해야 한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국가들은 차등의결권·포이즌필·황금주 등 다양한 경영권 안정수단을 도입하고 있다.
현행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제도 폐지돼야 한다. 세계 어떤 나라도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없다. 이는 심각한 사유 재산권 침해이며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2004년에 외국계 펀드 소버린과 SK 경영권 분쟁 당시 SK주식 14.99%를 보유한 소버린은 펀드를 5개로 쪼개 각 2.99%씩 보유, 모든 의결권을 행사했으나 SK 최대 주주 측은 3%만 의결권을 행사한 사례가 있다.
투기자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업 지배구조 규제 강화에 신중해야 한다. 이미 국회에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다수 계류 중이다. 이러한 제도가 입법화되면 최악의 경우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 중 7개 기업의 경영권이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에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권이 투기대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엘리엇과 같은 해외 투기자본의 위협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기 어렵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모든 경영권 경쟁 참여자에게 대등한 무기를 줘야 한다. 모두에게 공정한 경쟁의 룰이 필요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