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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서재 <15>뮤지컬 배우 카이]"넘길수록 차오르는 즐거움...이 맛에 책 읽죠"

배우 인생에 도움된 책은

문유석 판사 '개인주의 선언'

무대위 순간판단력 중요한 제게

삶을 대하는 방식 가르쳐줬죠





뮤지컬 배우 카이(사진)는 청아하고 따듯한 음색에 섬세한 감성을 녹여내 여성팬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며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타고난 서정적인 음성 덕에 라디오 방송에서도 러브콜을 받은 배우다. 이 때문에 오디오북으로 ‘책 읽어주는 남자’로 제격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스타의 서재’ 15번째 주인공인 그가 마음을 움직인 문장들을 정성스레 읽어줄 때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듣는 듯하다” 기자의 농담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는 부모님댁에서 독립할 때 책이 너무 많아서 버리고 갔을 정도로 ‘다독가’이자 여행지 등 낯선 곳에서는 읽는 글들을 사랑하는 ‘애독가’이기도 하다. 그를 최근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블루스퀘어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장소에 좋아하는 책을 에코백에 잔뜩 담아 나타났다. 어떤 책부터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밀리언셀러 에세이 ‘언어의 온도’를 먼저 꺼내 들었다. 그는 “일상에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단순하고 어렵지 않게 풀어낸 점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그는 일정 정리에 착오가 생기는 바람에 ‘팬텀’ 서울 공연과 ‘프랑켄슈타인’ 부산 공연을 번갈아 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해운대 카페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좋은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었고 아직도 기분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또 사랑의 의미를 가슴 저릿하게 전하는 에세이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도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화가 김환기와 아내 김향안의 삶과 예술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카이는 “화백과 아내가 연애를 시작할 때 주고받은 편지 등이 수록됐는데 결혼 후에도 부부가 어떻게 서로 의지하는지를 잔잔하게 보여준다”며 “슬픈 내용은 아닌데도 굉장히 슬프기도 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영혼의 짝으로서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숭고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는 것이다.

‘글 쓰는 판사’로 불리는 문유석의 ‘개인주의 선언’ 역시 마음에 담고 있는 책이다. 무대를 비롯해 일상에서 판단할 때 도움이 됐다고 한다. “판사는 예술을 하는 저와 상당히 다른 직업이죠. 그런데도 문 판사 삶의 방식은 비슷한 게 많았어요. ‘예술적 판사’인 것 같았어요. 배우는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으면 무대에서 순간적으로 판단력을 잃을 때가 많아요. 스스로 자기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모습이 무대에서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하는 저에게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또 카이는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최근 읽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인 건 82년생이라는 부분”이라며 “국민학교, 오전반 오후반, 폭행 수준의 체벌 등이 당연시되던 사회 분위기가 너무나 와 닿았다”고 전했다. 카이는 “나 역시도 ‘81년생 정기열’로서 고의는 아니었지만 당시 제도화된 성차별의 흐름과 부조리를 그대로 따랐다”며 “성차별인지 자체도 깨닫지 못했다는 데 대해 많이 각성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카이는 감명 깊게 읽은 책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에세이집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가운데 ‘구원’ 부분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줬다. “당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과 내가 당신에게 전해야만 하는 말이 다를 때, 나는 가만히 당신의 손을 잡겠다. 때론 가벼운 눈짓 손짓 하나가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순간에서 단 하나의 구원이 된다.”

이어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놓았다. 그는 “나이가 한 살 한 살 차가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거절의 말을 할 때도, 혹은 거절을 받을 때도 많아진다”며 “참 그게 두려운 일로 아직도 아무리 태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마음의 넓이를 넓히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거절은 일이나 사람, 혹은 마음일 수도 있다”며 “명확히 거절하는 것보다 좀 전에 읽은 ‘손을 잡아 준다’라는 구절처럼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칼로 잘라버리듯이 하고 싶지 않더라”고 부연했다.

2003년 군복무시절부터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는 카이는 당시 이야기도 들려줬다. “공익으로 군생활을 했어요. 굉장히 특이하게도 농사를 짓는 보직을 맡게 됐죠. 아침에 상당히 일찍 출근을 했는데 해 뜰 때 물을 줘야 하고 남보다 일찍 퇴근해야 하는 생활 패턴이었죠. 새벽녘에 일과를 마치면서 오후에 할 만한 게 독서밖에 없었어요. 아주 쉬운 소설부터 하나씩 읽었죠. 형한테 ”야 너 책 좀 읽어라“라는 말을 듣던 정기열이라는 인간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EMK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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