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한 가운데 그어놓은 완충녹지 때문에 공정이 완전히 단절되고 증설은 꿈도 못 꿉니다. 사정이 이렇지만 행정은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경북 영천시 도남동에 위치한 대륙전선 김영진 대표는 “막무가내식 도시계획으로 공장이 쪼개졌는데 행정이 수십년간 아무런 대책을 세워주지 않는다”며 “공장을 접으란 말이냐”며 답답해했다.
김 대표의 말대로 대륙전선은 전체 공장면적 2만2,714㎡ 가운데 무려 43%인 9,917㎡가 도시계획상 완충녹지로 지정돼 있다. 그것도 완충녹지가 공장 A·B동과 C동 사이를 완전히 양분하고 있다. 17일 서울경제신문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이 완충녹지는 도시계획으로 지정만 돼 있을 뿐 실제 녹지가 조성돼 있지는 않았고 군데군데 전선 완제품이 야적돼 있었다. 완충녹지의 남쪽은 공업지역, 북쪽은 일반주거지역이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대륙전선의 창업주는 경기 안산공장 외에 2공장을 지난 1978년 현재 위치에 설립했다. 새마을사업에 박차를 가하던 정부의 적극적인 유도에 따라 영천 새마을 2호 공장으로 설립됐다. 설립 당시 도남동 일대는 농지로 둘러싸인 허허벌판이었다.
창업주가 지난 1998년께 생산량이 늘어나 공장 증설을 위해 영천시에 건축허가를 냈고 이 때 공장 중앙이 완충녹지로 지정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공장이 먼저 들어선 상태에서 행정기관이 현장을 보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 도시계획선을 그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창업주가 완충녹지 해제에 나섰으나 결국 해결하지 못했고 창업주로부터 지난 2000년 4월 경영권을 이어받은 김 대표도 이 문제로 20년 가까이 속을 썩고 있다. 김 대표는 “수차례 영천시를 찾아 해법을 모색했지만 공무원은 앵무새처럼 ‘법적으로 힘들다’는 답변만 늘어놓았다”며 “민원인 입장에서 개선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전혀 없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답답한 마음에 국토교통부 등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매번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는 “공정이 물 흐르듯 흘러야 하는데 가로막힌 완충녹지 때문에 지게차로 왔다갔다 해야하는 실정”이라며 “완충녹지가 해제된다면 약 100억원을 투자해 A~C공장을 하나로 모은 통합공장 및 다양한 부대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완충녹지 해제가 도저히 힘들면 공장 주변으로 우회할 수 있는 방안이라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대륙전선은 피복절연선 및 케이블을 생산해 한국전력, SK텔레콤, 삼성전자 등에 납품하고 있다.
인근 삼양연마공업도 사정이 비슷하다. 공장이 먼저 들어선 상태에서 공장 일대가 생산녹지로 묶이면서 환경규제와 견폐율 제한으로 설비투자나 증설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다. 삼양연마 역시 1977년 8월 설립된 영천 새마을 1호 공장이다. 공교롭게 영천에 가장 먼저 설립된 2개 공장이 어처구니없는 도시계획으로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손동기 삼양연마공업 대표는 “공장용지 중 20%밖에 사용을 못하기 때문에 증설이나 설비 확충이 안된다”며 “심지어 직원 건강관리를 위해 공기를 깨끗하게 하는 집진기 설치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증설을 못하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해결이 안 되면 생산기지를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 해외로 옮기는 것도 고려해야할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이 회사에서 생산된 연마석은 반도체는 물론 자동차부품, 조선, 철강 등의 산업에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천시 관계자는 “완충녹지 해제나 생산용지를 다른 용도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다만 대륙전선의 완충녹지는 내년 7월 장기미집행도시계획시설에 대한 해제가 이뤄지면 자연녹지로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연녹지가 되더라도 생산시설 건립은 여전히 힘든 실정이다. /영천=손성락기자 ss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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