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빅딜’과 ‘단계적 동시행동’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청와대가 중재안을 내놨다. 미국이 주장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일시에 달성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한두 번의 ‘조기 수확(early harvest)’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빠르게 최종목표에 달성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17일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한미 간 비핵화 최종 목표 도달을 위한 로드맵에 대해 확실하게 공유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완전한 비핵화를 일시에 달성하는 것은 어렵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전략’에 대해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물론 협상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미국 인사 전부가 ‘전부 아니면 전무’ 정책을 써 왔는데, 결이 다른 말을 공개적으로 한 것이다.
대신 청와대는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하도록 견인하고 그 바탕 위에서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한 한두 번의 조기 수확을 하고 이를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해 최종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핵 리스트’ 제출 및 비핵화 로드맵 합의는 북미 상호신뢰가 부족하다며 거부하고 있다. 이에 영변 폐기와 이에 합당한 상응조치 등 한 두번의 비핵화-상응조치를 빠르게 주고받아 신뢰를 쌓고 결국 로드맵에 합의해 최종적인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이미 영변 부분 폐기와 일부 남북 경제협력 허용 등 ‘스몰딜’을 미국이 이미 하노이에서 거부한 가운데 이를 받아들일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역시 영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어 작은 경제적 보상에 응할지 불투명하다.
청와대는 앞으로 남북 대화에 주력할 뜻도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북미 싱가포르 회담을 견인했고 싱가포르 회담이 남북 평양회담을 견인했다”며 “이번에는 남북 대화의 차례다. 우리에게 넘겨진 바통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긍정적, 유화적 자세를 유지해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을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9·19 군사합의 이행,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화 등이 연내 본격 시행되도록 하고 남북 공동유해발굴, 한강 하구 민간 쌍방 자유항해 등은 4월 초 실행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과는 별도로 올해 말 한국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에 김 위원장 초청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을 달래는 도구로 금강산·개성공단은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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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북미 관계에 대해서는 “모두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 같다. 사실상 과거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노이 ‘노딜’에 대해서는 “미국이 실보다 득이 많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합의가 무산되면서 미국이 국내 정치적 부담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며 “어떤 면에서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고 평가했다. 또 “미국 입장에서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받았다”며 “북한은 당황스럽지 않았겠나.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60시간 이상 기차여행을 했는데 빈손 귀국한 것에 대해 국내 정치적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추정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빅딜’과 청와대가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낸 데 이어 북한에 경도된 듯한 발언이어서 이 부분은 논란이 일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곧 김 위원장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다고 외신 등에 보도가 됐는데 알고보면 최 부상은 개인 의견이라고 하면서 김 위원장이 결심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며 “곧 김 위원장 성명이 나올 것처럼 보도되는데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고 역설했다.
한편 미국 조야와 국제사회에서도 협상을 깨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북한전문매체 NK뉴스에 따르면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대북제재 강화뿐 아니라 남북경협 차원을 뛰어넘는 국제경제지원방안(international economic plan)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도 지난 12일(현지시간) 공개한 연례보고서를 통해 지난해와 달리 이례적으로 대북제재로 인한 인도적 지원 사업의 어려움을 비교적 상세히 지적하는 등 대북협력사업 추진을 위한 명분을 제공해줬다. /이태규·박우인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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