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처럼 영원히 견고할 것만 같던 중국 경제 시스템이 거대한 부채 더미에 짓눌려 흔들리고 있다. 성장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부채를 지렛대 삼아 실시해온 경기부양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푼 과잉부채로 인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성장률 하락을 감수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지만 사회 안정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한 ‘폭탄 돌리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국 지도부가 처한 딜레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월 전국의 성과 시, 중앙부처 장관들이 모인 회의에서 “중국이 당면한 기업부채, 그림자금융, 부동산 거품은 ‘회색 코뿔소’”라고 직접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색 코뿔소’란 멀리서도 눈에 잘 띄지만 두려워할 뿐 아무 대처를 하지 못하는 위험을 의미한다. 시 주석이 공개적으로 시인할 정도로 과잉부채가 심각하지만 해결책도 쉽지 않다는 데 중국 경제의 문제가 있다.
중국 과잉부채 해결의 기본적인 어려움은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 당국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기업들의 부채 규모를 공개하지 않는다. 정부가 알고 있는 액수가 정확한지는 또 다른 의문이다. 통계의 불명확성이 경제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중국 총부채가 219조1,000억위안(약 33조1,000억달러)이라고 추산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무려 253.1%에 달한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중국 총부채 규모가 GDP의 300%를 넘어섰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기업부채로 총부채 중 61%를 차지한다. 이들 기업부채 비율은 155.1%로 미국(74.4%)의 2배 이상이며 신흥국 평균(97%)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중국의 과잉부채는 그 규모도 크지만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가파른 증가세가 더 심각한 문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던 2008년 중국 부채비율은 138%에 불과했지만 이후 1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막대한 부채가 성장 일변도 정책의 부산물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이 경제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세운 인프라 시설이나 공장·주택 등은 대부분 빚으로 지어졌다. 수익이 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고스란히 악성채무로 잡힌다.
문제는 정부 주도 사업의 책임 여부를 가릴 수 없다는 점이다. 모럴해저드가 가장 심한 곳은 국유기업들인데 이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도 부담이 없다. 은행도 국영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경기둔화로 이 같은 ‘봐주기식’ 거래가 탈이 나기 시작했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에 민영기업뿐 아니라 국유기업도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회사채 디폴트는 38건, 1,349억위안 규모를 기록했다. 2016~2017년 연간 400억위안이 안 되던 것이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는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비금융권 기업의 만기 물량은 무려 3조5,000억위안에 이른다.
중앙정부의 사업을 대행하는 지방정부의 이른바 ‘숨겨둔 부채’도 적지 않다. 지방 관료들은 고과관리를 위해 악성부채 규모를 밝히지 않는다. 중국 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중국 지방정부의 공식 부채는 18조위안으로 평가되지만 이 수치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인중칭 전국인민대표대회 재경위원회 부주임은 최근 “지방정부가 은닉·위장한 부채가 최소 20조위안”이라며 “공식 통계는 절반 이하로 과소측정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중국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 규모를 40조위안으로 추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5일 올해 정부 업무보고에서 중국 정부는 2조위안대의 부양책을 공개했다. 일각의 예상치보다는 적은 수준으로 평가되지만 과거 풀었던 대규모 유동성의 후유증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추가 부양책은 적잖은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016년 경기침체 당시 투입한 4조위안이 실물경제로 가는 대신 부동산이나 금융으로 유입돼 거품만 키웠다는 비판과 함께 이들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악성부채로 남아 있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충격과 내수경기 둔화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국 최고지도자까지 나서 경기 하방을 우려하고 있지만 과거의 부채에 발목이 잡히면서 투입할 수단은 제한돼 있는 실정이다.
마이클 페티스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에서 당장 부채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과잉부채를 과감하게 청산하지 않고 존속시키는 것은 장기적으로 중국 경제에 더 큰 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잉부채 문제가 중국 지도부의 역학관계까지 바꿀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국가주석이 정치를, 국무원 총리는 경제를 맡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졌는데 시진핑 정부 들어 시 주석이 이른바 ‘시코노믹스’를 내세우면서 경제 분야까지도 장악했다. 하지만 공산당의 역할을 강화하며 중상주의 경제를 위한 부양책을 확대한 ‘시코노믹스’가 결국 최근의 부채위기와 미중 무역전쟁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리커창 총리의 개혁 방안인 이른바 ‘리코노믹스’는 시장 위주의 개혁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거진 과잉부채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지난 양회에서 리 총리가 류허 부총리 등의 정책 관련 경제팀에 비판을 가했다는 말이 있다”며 “중국 정부의 무리한 정책이 미중 무역전쟁을 유발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향후 경제 기조가 바뀔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