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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신청 줄잇는 지방中企] 광주 2년새 3배↑... 조선·기계업종 몰린 경남 '역대 최다'

최저임금에 기진맥진...지방中企 구조조정 최선두 내몰려

작년부터 파산·회생신청 건수 폭증...4년만에 서울 역전

"일감 늘어난 곳은 지방법원 파산부뿐" 자조섞인 반응까지





“최근 공단 주변 업체 중 20%는 전업하거나 폐업한 것 같아요. 남아 있는 기업 중에서도 절반은 개점휴업 상태이고 제대로 돌아가는 곳은 몇 곳 안 됩니다.”(부산 녹산공단에 있는 한 조선기자재 업체 관계자)

최근 조선·기계·자동차 산업 등과 관련한 협력업체들이 몰려 있는 지방공단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아우성 속에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국내 대형 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하는 상황에서 재무구조가 취약한 지방 중소 협력업체들이 산업 구조조정의 최선두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울과 소득 수준이 다른데도 일률적으로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 정책 등이 겹치면서 사업 존폐를 고민하는 기업들이 폭증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방기업 위기의 심각성은 서울회생법원과 각 지방법원 파산부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사실로도 쉽게 확인됐다. 18일 서울경제신문이 법원 도산 관련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에 따라 매년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던 법인파산·기업회생 신청 건수는 지난 2017년 잠시 주춤하다 지난해부터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16년 740건, 936건으로 한 번 정점을 찍었던 법인파산과 기업회생 건수는 2017년 699건, 878건으로 일시 감소한 뒤 지난해 807건, 980건을 기록하며 급등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올 1월까지 법인파산 건수가 전고점을 돌파하고 기업회생 건수도 최고치에 도달하자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각각 연간 1,000건을 넘어서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무엇보다 현 정부 이후 추세의 특징은 파산·회생 신청 건수가 서울 이외 지역에서 더 뚜렷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과 2016년의 경우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법인파산 건수는 지방보다 30~40건가량 많았다. 그러다 2017년 그 격차가 3건으로 줄더니 지난해에는 서울 402건, 서울 외 지역 405건으로 4년 만에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서울회생법원의 파산 신청 건수는 2016년 390건에서 12건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350건에서 405건으로 무려 55건이나 수직상승했다. 이 추세는 올 1월에도 이어져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1월 서울 36건, 지방 24건이었던 파산 신청 격차가 올 1월에는 33건, 30건으로 좁혀졌다.



기업회생의 경우도 서울회생법원에 들어온 신청 건수는 2016년 404건에서 2018년 389건으로 15건이 줄었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532건에서 591건으로 59건이나 늘었다. 그 사이 2016년 128건에 불과했던 서울과 지방 간 기업회생 신청 차이는 지난해 202건으로 벌어졌다. 올 1월에도 지방의 기업회생 신청 건은 45건으로 37건의 서울을 압도했다.

김해 안동공단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체 공단컨설팅의 서병수 대표는 “문 닫는 공장 부지 매물은 쏟아지는데 사겠다는 사람은 없다”며 “이곳에서 30년을 중개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남권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도 “최저임금 인상, 단가 인하 압력에다 선투자했던 설비가 돌아가지 못하면서 비용만 늘고 있다”며 “신제품·신기술을 개발할 여력도 없다”고 걱정했다.

지역별로는 지난해 대전(55건)·청주(17건)·광주(30건)·창원(39건)지방법원이 파산 신청 최대치를 기록했고 대구(82건)·부산(51건)·창원(97건)지방법원은 기업회생 신청 부문에서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 특히 지난해 광주지법에 들어온 파산 건수는 2016년(11건)에 비해 무려 3배나 늘었고 조선·기계·전자업종 회사가 몰려 있는 경남 지역을 관할하는 창원지법은 파산과 기업회생 모두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지방법원 파산부 판사 수는 그대로인데 사건만 매년 급격히 늘어나니 법원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과거에는 기업들이 파산·회생제도를 잘 몰랐다가 서서히 알게 되면서 건수가 늘었다면 최근에는 경기 자체가 안 좋아 늘어나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도산제도는 외환위기 때인 1999년 3월 사실상 처음 도입돼 이달로 꼭 20주년을 맞는다. 이전까지는 장기간에 걸친 경제 호황으로 무너지는 기업이 적었던데다 기업회생·파산의 개념이 희박해 사업이 망하더라도 자체 폐업·부도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굵직한 대기업·금융회사들의 파산 사건이 쏟아지면서 그동안 각 지방법원 민사수석부에서 담당하던 업무가 파산부로 독립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설된 파산부의 초대 수석부장판사는 다름 아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었다.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파산에 관한 법률)’이 처음 시행된 2006년만 해도 법인파산과 기업회생 신청은 각각 132건, 76건에 불과했다. /윤경환·박한신·박성호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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