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들은 야망이 있고, 잘하고 싶어 하고, 게으르지 않죠. 문태국도 그렇고요”(로런스 레서)
“레서 선생님은 엄격하게 강요하기보다는 학생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이세요”(문태국)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첼리스트의 스승’ 로런스 레서(81)와 제자인 문태국(25)의 만남은 정겨웠다. 말끝마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묻어났다. 문태국은 최근 발매한 인터내셔널 데뷔앨범인 ‘첼로의 노래’를 레서에게 직접 전하기도 했다. 이들 스승과 제자가 함께 인터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레서가 오는 21일 금호아트홀에서 ‘위대한 첼로’ 시리즈로 독주 무대를 펼치기 위해 내한하면서 보기 드문 자리가 마련됐다. 문태극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레서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이었다. 문태국은 두 달 전 미국 방문 길에 레서를 만나는 등 꾸준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레서의 금호아트홀 독주회는 10년만이다. 내한 공연은 2년만이다. 직접 엄선한 버르토크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랩소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제4번, 베토벤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 주제에 의한 변주곡 E플랫 장조,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G단조가 연주된다. 레서는 “시작과 중간, 끝이 있는 책처럼 프로그램을 구성했다”며 “한 편의 러시아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감정이 살아있는 이야기를 선보이려 했다”고 말했다.
‘거장 첼리스트’인 레서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1961년 졸업 후에야 독일 쾰른으로 건너가 명 첼리스트 가스파르 카사도를 사사하며 첼리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파블로 카잘스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당신에게 이런 재능을 준 하늘에 감사한다”는 극찬을 들은 후 그레고르 피아티코르스키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후 그의 조교를 거쳐 남가주 주립대학(USC)의 교수로 임용됐다. 1974년부터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총장 및 교수를 역임하며 수백명의 제자들을 배출해 세계적인 첼리스트들의 스승으로 꼽힌다. 한국 첼리스트 조영창·고봉인·문태국 등도 그의 제자다. 또 1966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50년 넘게 직접 무대에 오르고 있다.
레서에게 연주자 지도자 중 어떤 일에 더 즐거움을 느끼냐고 묻자 “연주자와 교수로서의 삶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다”는 답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도 배우게 된다”며 “레슨 과정도 연주의 일부”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요즘 젊은 연주자들이 음계를 잘 연주하고 완벽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그것(기교)에만 집중하다 보면 음악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스승이자 첼로 거장에게는 권위적인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문태국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이라며 “굉장히 인간적이신, 요즘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성인군자 같다”고 말했다. 레서는 스스로를 “낙관주의자”라고 표현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오케이, 좋아’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레서에게 가르칠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을 묻자 “곡의 경향과 사조도 잘 알아야 하지만 곡을 충분히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며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은 물론 인생에서도 ‘스스로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거꾸로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스스로 좋아해서 하는 일인가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의 승리자입니다. 힘들 때도 있겠지만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또 어떻게 잘 보낼까 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죠 ”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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