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 정일우가 연기도, 사이다도 제대로 터뜨렸다.
시대를 불문하고 지도자는 민심을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권력자들의 눈치만 보는 사람은 지도자의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없다. 민심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왕자.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볼 줄 아는 세제저하. SBS 월화드라마 ‘해치’(극본 김이영/연출 이용석/제작 ㈜김종학프로덕션) 속 진짜 왕재 정일우(연잉군 이금 역) 이야기다.
3월 18일 방송된 ‘해치’ 21~22회에서는 살주(주인을 죽이다) 사건에 연루돼 세제 자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금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앞서 이금은 한 소녀가 양반을 죽이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 소녀의 몸에는 주인을 죽인다는 뜻의 살주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살주 사건이 밝혀지면 많은 백성들이 처참한 고통에 빠질 것을 직감한 이금은 소녀의 존재를 모른 척했다.
어떻게든 살주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이 해결되길 바랐던 이금.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살인 진범인 소녀가 이금과 감찰들 앞에 끌려온 것이다. 결국 이금은 가엾은 소녀를 감싼 채 일어섰다. 때문에 이금은 “사대부에 등을 돌린 것”이라며 세제 폐위 위기에 처했다.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금은, 자신을 믿어준 임금 경종(한승현 분)을 지키기 위해, 큰 결심을 했다.
이금은 양반들을 위해 열린 연회 자리에서 충격적 발언을 쏟아냈다. “땅에서 일하는 자(백성)가 없다면 그대(양반)들은 어떻게 먹고 입을 것인가. 누가 누구 덕분에 살고 있는가. 그런 수탈은 없어져야 한다. 세제인 내가 언젠가 보위를 잇는다면 땅의 세금은 땅의 주인에게 매길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세제 입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백성들을 위한 말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에 감동받은 백성들은 자신의 호패를 걸고, 이금을 위한 격서를 붙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백성들이 너도 나도 자신의 호패를 내놓으며 뜻을 같이했다. 백성들이 꺼낸 호패는 어느덧 산처럼 쌓였다. 이금이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진심으로만 민심을 움직인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조선시대에는 결코 당연할 수 없었던 말. 이금은 불합리하지만 모두가 당연하게 여긴 것에 반기를 드는 왕자였다. 그 어떤 것보다 백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진짜 타고난 왕재였다. 그의 시원하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한마디가 그 어떤 사이다보다 강력했던 이유이다.
이금이 민심을 잡았다면, 화면 속 이금으로 분한 배우 정일우는 시청자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날 정일우는 눈물이면 눈물, 카리스마면 카리스마, 섬세함이면 섬세함 등 모든 면에서 한층 성숙하고 깊이 있는 열연을 펼쳤다. 스토리 변화에 따라 집중력 있게 표현하고 유려하게 극을 쥐고 흔드는 정일우의 연기가 ‘이금’이라는 인물의 진정성과 매력, 힘을 배가시킨 것이다.
이금이 진짜 왕재라는 것을 입증한 60분이었다. 드라마 ‘해치’를 이끄는 주인공으로서, 정일우의 연기력과 존재감을 입증한 60분이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강력해지는 ‘해치’의 스토리가, 그 스토리 속에서 더욱 강력해지는 배우 정일우가 궁금해서 시청자는 매주 월, 화요일 밤이 기다려진다. 한편 SBS 월화드라마 ‘해치’는 매주 월, 화요일 밤 10시 방송된다.
/김진선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