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적 동포가 공시지가에 근거한 재개발 부동산 보상이 적정하지 않다며 제기한 투자자국가소송(ISD)에 대해 우리 정부가 본안 절차 전에 끝내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26일 “우리 정부는 서씨와의 ISD 중재판정부에 서모씨의 청구에 관해 관할권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피청구국의 본안 전 이의 제기 서면’을 제출했다. 지난해 7월 서씨는 서울 마포구 대흥2구역 재개발지역에 있던 자신의 부동산을 지난 2016년 정부가 수용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약 300만달러(33억원)의 손해배상 ISD를 제기했다.
서면에서 정부는 서씨가 2001년 해당 부동산을 거주 목적으로 구입했기에 FTA 대상인 ‘투자’에 해당하지 않으며 만약 투자에 해당한다 해도 2013년 미국 시민권자가 된 서씨는 2012년 FTA 시행 당시 한국 국적이었기에 FTA 대상인 ‘적용대상투자’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서씨가 2016~2017년 중앙토지수용위원회와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이미 ISD 청구 취지와 같은 사실관계를 언급했다며 FTA 조항이 금지하고 있는 동일 주장에 따른 청구라는 주장도 펼쳤다. 이외에 위반 사실을 최초 인지한 지 3년이 지나면 중재를 제기할 수 없는데 서씨는 2014년부터 보상액수를 항의했기에 이 기간을 초과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청구는 2008년 재개발조합 가입에 동의한 정황을 포함하기에 FTA 발효일 전에 발생한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ISD 본안이 열리기 전 관할권을 다투는 절차가 시작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후 서씨가 반박 서면을 중재판정부에 제출하면, 한국 정부가 재반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이번 신청서 접수로부터 150일 이내에 결정·판정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ISD에서 정부가 패소하면 이와 비슷한 소송이 줄줄이 제기되는 것은 물론이고 토지보상제도도 손봐야 할 가능성이 높아 정부로서는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중재업계에서는 이 관할권 항변 절차가 사실상 승부처라고 본다. FTA 11조에는 각종 보상에 대해 ‘공정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어 본안 절차로 넘어가면 정부가 패소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정부의 토지보상금은 직전 발표된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반으로 한 감정평가 등을 거쳐 결정된다. 중재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미 FTA에 따르면 공정시장가격 보상 필요가 명백해 정부로서는 본안이 시작되면 곤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서씨의 미국 시민권 주장 절차 관련 남용 의혹에 대해서는 관할권 항변 절차가 계속될 시 이의제기하기로 했다. 이는 서씨가 2016년 2월 서울지방토지수용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진 후 7일여 후에 부동산 소유권 등기부에 본인 설명을 미국 성명으로 변경했다는 점과 관련된 것이다. 중재업계에서는 정부가 이를 이의제기 절차에서 마지막 카드로 쓰기 위해 아껴뒀다는 분석이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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