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역사상 최악의 총기 테러를 일으킨 호주 국적의 브렌턴 태런트가 쏘아 올린 반(反)이민 정서가 유럽에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뉴질랜드 테러 이후 강경 난민정책에 불만을 품은 이민자들의 테러가 이어지며 유럽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는 가운데 각국 정부나 정당들은 반이민·난민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여 테러와 반이민정책 강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의 한 중학교 학생 51명을 태운 스쿨버스가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의 운전사에 의해 납치돼 방화로 전소했다고 전했다. 경찰의 발 빠른 대처로 학생 전원이 무사히 구조됐다지만 수십 명의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질 뻔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유럽 각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세이누 사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범인은 휘발유와 라이터로 학생들을 위협하며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이 죽고 있다”며 “이는 모두 (이탈리아 부총리인 루이지) 디마이오와 (마테오) 살비니 탓”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체포된 후에도 “지중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난민들의 죽음을 멈춰야 한다”고 외쳤다.
외신들은 “지중해를 건너오는 아프리카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 항구를 봉쇄하는 등 반난민정책을 펴는 이탈리아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이 이번 범행의 동기”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지난해 6월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부 출범 이후 반난민·반이슬람을 강조하는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의 주도로 강경한 난민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들어 이탈리아로 들어온 난민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4%나 급감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이탈리아의 강경책으로 지중해에서 사망하거나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리비아로 송환되는 난민이 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에는 네덜란드 중부도시 위트레흐트에서도 총격 사건이 발생해 3명이 사망했다. 용의자가 터키 출신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반이민정책 관련 테러일 가능성이 제기됐고, 네덜란드 검찰은 그를 테러 살인 혐의로 기소하기로 했다.
뉴질랜드 테러가 발생한 지 불과 일주일도 안 돼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테러가 연달아 발생하자 가뜩이나 극우 정서가 고조돼온 유럽 내 반이민·난민 정서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의 난민정책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한 각국 설문에서 찬성 비중은 전체의 4분의1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자 수가 증가할수록 테러 위험이 높아진다는 응답 비중도 57%나 되는 등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위트레흐트 총격 사건 이틀 뒤에 실시된 네덜란드 지방선거에서 중도우파 자유민주당(VVD)을 비롯한 4개 연립여당은 의회 상원에서 지지율이 떨어져 의원 상원 과반이 붕괴된 반면 반이민을 내세우는 포퓰리스트 정당 ‘민주주의를 위한 포럼(FvD)’은 처음으로 상원에 진출해 상원 75석 중 12석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네덜란드 언론들은 “총격 사건이 투표율을 높이는 등 유권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쳤다”며 “이들 대부분은 정부의 이민정책을 비난한 반난민 정당에 투표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FvD의 티에리 보데 대표는 총격 사건으로 다른 정당들이 유세를 중단한 와중에 “정부는 우리의 국경을 활짝 열어놓았고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수십만의 사람들을 들여보냈다”며 반이민 유세를 벌여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이처럼 유럽 내 반이민·난민 정서가 고조되자 유럽의회 최대 교섭단체인 유럽국민당(EPP) 그룹은 이날 총회에서 반난민 캠페인을 벌여온 헝가리 여당 피데스에 대해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번 조치로 피데스는 모든 EPP 회의에 대한 참석 권한과 투표권은 물론 의원 후보를 낼 자격도 박탈당했다. 하지만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폴란드 여당 등 EPP에 속하지 않은 동유럽 국가 우파 정당들과 연대하며 반난민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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