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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노포 자리 옮기면 맛 변해"…보존-재개발 이전 놓고 '입씨름'

■노포의 변신은 유죄

박원순 시장 "청진동 재개발 후 달라져

새 건물로 옮기면 예전 분위기 안 살아"

을지면옥·양미옥 재개발 계획 전면 유보

안전할 권리 내세운 주민과 갈등 커지고

50~60년된 노포는 철거해 형평성 문제도





세운상가 재개발 사업은 4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최근 ‘노포’를 놓고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올 1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소상공인의 생존권과 노포 보존을 위해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사업 전면 유보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이중 특히 ‘생활유산’으로 지정된 을지면옥·양미옥·을지다방·조선옥 등이 입지해 있는 세운3구역이 사업 재검토의 주요 대상이 됐다. 이후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사업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과 을지로 일대 공구상가의 생태계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다. 노포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 을지면옥 보존, 더 커지는 갈등=시는 세운3구역 내 을지면옥이나 양미옥처럼 사람들에게 기억돼 이어져 내려오는 생활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가 보존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시키자 공구상 철거 등을 반대해온 상인들은 환영하고 있다. 을지면옥을 비롯한 일대 땅 소유주 14명은 재개발에 반발하며 지난 2017년 7월 중구청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사업시행인가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철거로 쫓겨날 위기에 내몰린 공구상가 등 임대업자들도 재개발 반대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시의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3구역 일부 토지주들은 오래된 점포 하나 때문에 사업승인까지 난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세운상가 일대가 복잡한 골목길에다가 소방시설도 없는 노후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세운3-2구역은 지난 2017년 화재가 발생했으나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주민들이 직접 불을 꺼야 했던 위험천만한 기억을 지니고 있다. 또 대부분의 건물이 석면슬레이트 등 발암물질로 지어져 있고 주변 지역에는 벤젠·연마재 등 화학약품으로 악취가 가득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도심부적합 업종인 정밀가공공장들이 폐수처리시설도 없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어 도심 토양오염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공사지연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금융비용도 문제다. 사업시행사인 한호건설에 따르면 일부 소유주를 제외하면 3구역 토지 소유주의 평균 보유 면적은 50㎡가량이다. 그만큼 영세한 소(小)지주가 많다는 얘기다. 1983년 처음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래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한 동안 2명의 토지 소유주가 금융비용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이에 올 1월 세운3구역 토지주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의 재개발 재검토 방안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정비사업 추진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감사원에 서울시와 중구청을 상대로 을지로 노포 보존 결정은 잘못됐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형평성도 문제다. 길 건너편인 4구역은 노포를 이주시키는 등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오래된 상가와 음식점을 적극 보존하겠다는 서울시가 35년 된 을지면옥(세운3구역)보다 역사가 긴 4구역의 50~60년 노포들을 철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을지면옥 전경./이호재기자


◇ 갈등의 골 세운상가, 해결책 찾아야=세운상가 재개발 사업은 40여년 전인 197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상권 몰락, 슬럼화 등으로 1979년 세운상가 일대가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 서거 등 대형사건에 밀려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지나갔다.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인 2009년 세운지역 상가 재개발 이야기가 다시 나오면서 세운상가 일대를 철거하고 주변 8개 구역에 대한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이후인 2014년 사업장은 171개 구역으로 쪼개지면서 기존 통개발 방식에서 점진적 정비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러다 올해 1월 재개발 사업의 전면 연기가 결정된 것이다.

연말까지 ‘도심 전통산업과 노포 보존’에 초점을 맞춘 종합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밝힌 서울시는 현재까지는 중구청과 협의해 세운3구역 내에서 생활유산으로 지정된 노포인 을지면옥과 양미옥을 ‘강제적으로는’ 철거하지 않겠다는 데까지만 입장을 정리한 상태다. 그 이후 협상에 성공해 전면 철거한 뒤 기존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는 한편 보존 노포를 제외한 별도의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재개발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첨예한 갈등이 지속되면서 쉽사리 해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만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묘수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되고 있다.

박은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는 “세운상가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서기보다는 숙련된 기술을 청년 세대로 전수할 수 있는 학교·연구소·실험공간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임대 공공산업시설을 도입해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고 청년·시니어 장인들을 위한 활동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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