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우리는 시행착오든, 성공의 기억이든 많은 것을 ‘축적’해 저력이 있어요. 제조업, 공공 부문, 금융, 교육에서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꿔 혁신국가로 거듭나겠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야 합니다. ”
이정동(52·사진)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은 지난 18일과 19일 각각 서울 종로의 한 식당과 서울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에 혁신을 둬야 하는 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활력이 점점 떨어지는데 혁신과제를 일관성 있게 정렬해 방향에 맞춰 밀고 나가 사회가 좀 더 북적북적해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같이 밝혔다. 각 분야에서 꿈과 비전을 갖고 기업경영을 하든, 업무를 보든, 학문·예술을 하든 혁신 마인드로 자기 나름의 모델을 갖고 도전하는 혁신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군대에서도 기술대학을 운영하고 테크니온공대 등 대학이 산학협력 모델이 되는데 우리도 각자의 영역에서 혁신친화적으로 탈바꿈하자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축적의 시간’ ‘축적의 길’이라는 ‘축적’ 시리즈를 통해 혁신을 ‘왜’ 하는지 질문하며 도전적 시행착오를 축적하는 전략과 열쇠를 제시해왔다. 서울대에서 드문 토종박사(서울공대 학·석·박사)로 한국생산성학회장과 기업경영학회장을 역임했고 지난해부터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이자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앤드퍼블릭폴리시(옥스퍼드저널)’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또 올 1월 말 신설된 경제과학특보를 맡아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가 갈 방향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그는 “국가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변화와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리더십을 끊임없이 강조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대담: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그는 인터뷰에서 “기존에 선진국을 빠르게 벤치마킹하고 정부 출연연구기관과 대학·기업에 연구개발(R&D) 예산을 투입해 성장했던 추격형 모델이 중국의 부상으로 한계에 왔다”며 기존에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물론 혁신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도 힘줘 말했다.
그는 “신산업도 몇 가지를 선택해 집중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자율주행·배터리·바이오·인공지능(AI) 등 각자 모두 중요한데 그 어떤 신산업이든 시행착오를 통해 커나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기반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산업 육성이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신산업 육성은 고용과 대치(서로 맞서 버팀)하는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을 높여 기존 산업도 혁신하고 신산업도 열어 나라가 도약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바이오를 한다면 공장을 세우고 실험장비를 만드는 것은 기존 제조업 아니냐. 두 분야는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에 실패하면 자칫 하청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100% 동의한다, 하청국가가 되지 않으려면 신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워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조업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모판(제조업)을 건강하게 잘 키워놓아야 논에 모내기를 한 뒤 (신산업이) 내실 있게 자라지 않겠느냐는 비유도 들었다.
그는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 “미국이 기술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행보인데 문제는 우리가 그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느냐 여부”라며 “불행히도 우리가 핵심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빅데이터 등 신산업 인프라를 지배하는 범용기술 기반도 약한데다 제조업도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첨단 분야에서 중국 교수의 미국 콘퍼런스 참여를 막은 사례가 나올 정도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으나 AI·빅데이터·5G인프라 등 혁신적 기반기술에서 우리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그는 “신재생이든 빅데이터든 중국이 더 잘하는 게 많다. 필히 우리의 산업 모델을 바꿔야 살 수 있다”며 “규제 혁신, 벤처와 제조업 육성, 금융혁신, 평생교육 등 대표적인 혁신과제들을 혁신국가라는 큰 비전하에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각오로 전면적이고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 리더십 차원에서 혁신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면 정책 당국자 등이 혁신적인 정책을 짜고 실행방안을 만드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규제가 공무원의 속성인데 쉽게 바뀌겠느냐’고 반박하자 “그러니까 더욱 혁신의 비전을 끈질기게 이야기하고 공감대를 모아나가야 한다”고 답했다. 국방부의 이공계 박사 과정 병역특례 축소 움직임으로 이공계 대학원이 흔들리는 문제에 대해서도 “현대전은 첨단기술전쟁인데 혁신국가의 방향에 비춰 판단하면 답이 나오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팩토리 등 제조업 혁신, 벤처 혁신, 규제 개혁·혁신, 공공 부문 혁신, 금융 혁신, 평생학습으로의 교육 혁신도 별개처럼 보이지만 실상 한 실에 꿰어 있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활력이 많이 떨어지고 있지만 기존에 시행착오나 축적된 경험이 많아 아이디어를 스케일업해 혁신국가로 탈바꿈하게 된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주문했다.
그는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기술이전이나 창업이 부진하다고 지적하자 “새로운 좋은 특허나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안 해보던 것을 해보려는 시장 기반이 돼 있지 않은 것이다. 증명된 모델을 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사회제도가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 지체’가 심각하고 금융시장도 리스크테이킹(위험감수)을 피하려는 문화가 뿌리 깊은 것도 창업을 포함한 신산업 활성화에 걸림돌이라고 했다. 위험의 사전예방도 중요하지만 혁신적인 시도가 이뤄지려면 답이 있는 현장을 정확히 파악해 일정 부분 ‘위험 공유’를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사회가 역동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 20조5,000억원의 예산이 출연연, 대학, 기업에 R&D비로 지원되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초과학 강화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연구자가 자율적인 규제하에 연구할 수 있는 틀을 갖춰야 한다”고 동의했다. 연구는 지원금이 적더라도 꾸준히 유지되는 게 중요한데 대학(한국연구재단)은 3년짜리, 출연연은 1년짜리 과제가 많아 장기 지속성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미세먼지 등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 해법을 과학기술계에서 전혀 내놓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자성했다.
고령화 시대에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 평생학습 체계의 내실화도 강조했다. 그는 “교육체계도 빨리 ‘교육’에서 ‘학습’으로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사회가 혁신하려면 평생교육 시스템을 확실히 구축해야 한다. 스팀(STEAM, 과학·기술·공학·인문예술학·수학의 융합) 교육도 제도권교육이 아니라 평생학습의 틀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교육 당국의 역발상을 강조했다.
그는 ‘기업가정신=도전정신’이라는 기존 해석에 대해서도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엉뚱한 얘기지만 위대한 기업가일수록 위험을 기피합니다. 기업가정신의 본체는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지 않게 철저히 준비하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젊은 층에 무조건 도전정신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산업혁신의 안전판, 즉 평생학습, 사회적 안전망, 자본시장 혁신 등을 통해 30~50대 ‘경력자 창업’을 활성화하고 그 속에 젊은 층이 합류해 배운 뒤 창업하는 게 선순환으로 가는 길입니다.”
한편 그는 올해 인류의 달착륙 50주년을 맞아 “우리 경제를 로켓에 비유하면 1단엔진 분리나 2단엔진 점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시행착오를 두려워하는 분위기에서는 미국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이 진작에 한 달 탐사를 언제 하고 소행성이나 화성은 또 언제 진출하겠느냐”고 비유했다. 정리=고광본선임기자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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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대구 △1990년 서울대 자원공학과 졸업 △1996년 서울대 공학박사 △1999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2011년 한국생산성학회장 △2017년 한국기업경영학회장 △2018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2018년 아시아태평양생산성콘퍼런스(APPC) 조직위원장 △2018년~ 사이언스앤드퍼블릭폴리시(옥스퍼드저널) 에디터 △2019년~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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