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기가 어려운 만큼 적극적인 재정 투입은 일견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 처음으로 ‘경기 대응’이라며 내놓은 혁신성장이나 신성장동력 확보방안은 기존 정책의 재탕이거나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고교 무상교육이나 공익형 직불제, 한국형 실업부조 등 대선공약을 대거 집어넣고 무분별하게 돈을 뿌리는 현금복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내년 중점사업으로 잡은 미세먼지 대책도 공기청정기나 마스크구입비 지원 등 일회성 예산 위주로 마련돼 실효성이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일자리 추경이나 아동수당 등 정책효과나 목표가 불분명한 것도 수두룩해 납세자들의 의구심만 키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세입 여건이 극히 나쁘다는 점이다. 당장 해외 수출이 고꾸라지고 있는데다 부동산 거래도 얼어붙어 세수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국내 총법인세의 20%를 떠맡는 삼성전자는 1·4분기 실적전망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자 시장 충격을 줄이겠다며 사전 설명자료까지 내놓을 정도다. 예산당국이 구체적인 재정 편성 규모조차 밝히지 못하는 것도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가 뚜렷한 재원대책도 없이 재정을 남발한다면 ‘문재인케어’로 적자 전환한 건강보험의 사례처럼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증가로 이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정부는 예산을 꼭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써야 할 책무가 있다. 내년 선거를 의식해 공약사업에 무리하게 매달리기보다 민간 부문의 성장을 자극해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살리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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