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고만한 대학을 졸업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던 저자는 온갖 갑질을 당할 수 밖에 없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영업사원으로 재고를 돌려막고, 길거리에서 시음을 권하는 일은 그의 일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푼푼이 모은 돈마저 금융사기로 날려버리면서 삶 자체가 위태로움에 빠졌다.
추락하는 삶 앞에 선 그는 한강 위에 덩그러니 놓인 성산대교를 바라보았지만, 용기를 내 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철학을 만났고,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이름도 없던 저자가 보낸 원고에 책을 내겠다고 나선 출판사는 열 곳이 넘었다.
책은 150년이 더 지난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니체의 ‘초인’이 ‘을(乙)의 언어로 재 해석했다. 그가 말하는 철학은 시간과 학문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젖혔다.
책에 등장하는 사건과 이로 인한 좌절은 실제 저자의 체험이자 사실이다. 여기에 철학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용했다. 전공이 아닌 책으로 철학 공부를 시작한 저자에게 학문적 계보를 이어야 할 의무도 없었던 덕분에 철학을 학문적 독해나 주석을 다는 학계의 과제로 머물지 않고 대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을의 위치에 한번이라도 있었던 기억이 있다면 책을 권한다. 철학은 나에게 이끄는 화해의 손길이자 살아가면서 마주친 많은 불운이 우연의 접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자책을 멈추고 자신을 모질게 검열했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온전한 자기 자신을 마주하라고 말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썩 아름답지는 않지만 추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의 모습은 달라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삶으로 이끄는 철학의 힘입니다.” 저자의 말이 오래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