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있을 때 장관 두 분을 모신 적이 있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서 그런지 모아둔 재산이 보좌관과 비슷했다. 군 생활이 몸에 배 국방 외의 정치 현안에는 말을 아꼈다. 그래도 대통령께 해야 할 말은 했고 그래서였는지 장관직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존경하고 있다.
장관 후보자 인사검증 청문회가 지난 27일 끝났다. 청문회는 각 부처의 장이자 국무위원이라는 국가의 중책을 맡을 사람들에 대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정책 역량과 도덕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다. 정부 요직에 우수한 인물을 임명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백년대계를 이루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의미를 지닌다.
물론 대통령중심제를 택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질서하에서는 대통령의 임명권이 국회의 청문회 판단에 우선한다.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적정한 후보로 채택되지 않아도 대통령은 그를 장관에 임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청문회 제도를 운용하는 이유는 대통령이라고 임명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해서는 안 되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후보자의 적격성을 판단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청문회를 지켜보는 마음이 무겁다. 정말이지 지금까지 이런 청문회는 없었다. 후보자가 생각하는 정책의 방향이 내 생각과 달라서가 아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도덕성 문제도 접어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펴지 못하고 입장 바꾸기에 급급했던 일부 후보자들의 모습이다. 진심일까.
국무위원은 헌법 제87조 2항에 따라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 국정을 심의”한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책을 맡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신이 지향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외부 압력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꿔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국무회의의 심의를 규정한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정하면 되지 뭐하러 국무회의를 두겠는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미국의 시스템을 잘 보여준다. 당시 북한은 영변 핵시설만으로 중요한 제재를 모두 해제하려고 했다. 북한의 과도한 요구에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게 된 미국은 합의를 거부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느 정도의 합의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적극적으로 말렸고 트럼프 대통령도 결국 이를 수용했다. 폼페이오인들 대통령의 뜻을 꺾고 싶었을까. 자칫하면 경질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는 북한과의 잘못된 합의는 북한의 핵 보유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의 안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믿었기 때문에 소위 ‘자리를 걸고’ 대통령에게 직언을 한 것이다.
우리도 자리 보전보다 소신을 중시 여기는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에 기틀이 잡힌다.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사과를 하며 생각이 같다는 취지로 입장을 바꾼 후보자들은 야당 정부에서 일할 생각인가. 청문회 통과를 위해 입장을 잠시 바꾼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런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에 안영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제나라 왕 영공의 애첩이 남자 옷을 입자 나라에 같은 풍습이 퍼졌다. 이에 영공은 궁궐에만 남장을 허용하고 민간에는 이를 금했다. 안영은 문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두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 즉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며 궁궐부터 단속하라고 직언했다. 영공이 이를 따르자 남장 풍습이 사라졌다. 안영을 두고 공자는 겉과 속이 같다 했고 표리일체(表裏一體)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이제 선택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누군가를 임명하면 곧 그 사람은 대통령의 얼굴이 된다. 문재인 정부 2기는 어떤 얼굴을 지니고 있는지 온 국민이 곧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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