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정여울의 언어정담] 당신과 나 사이의 피할 수 없는 ‘거리감’

커플간 어쩔 수 없는 간극 인정은

사랑 포기 아닌 성숙한 내적 자각

부모·자식도 적절한 거리감 필요

나 자신도 가끔 거리 두고 바라봐야

정여울 작가








영국에서 지하철을 탈 때 가장 많이 듣는 안내방송 문장이 있다. 마인드 더 갭(Mind the gap). 실질적인 의미는 ‘객차와 플랫폼 사이의 간격이 넓으니 조심하라’는 뜻이지만, 그 문장을 계속 반복해서 듣다 보니 매우 상징적인 의미로 들렸다. 이 문장을 인생에 적용하면 굉장히 다채로운 의미로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gap)을 생각하라. 너와 나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보라. ‘진정한 나’와 ‘연기하는 나’ 사이의 차이를 생각하라.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존중하라. 이런 식으로, 나는 이 문장을 여러 각도에서 응용해 보았다. 어느 정도의 ‘갭’이 필요한 관계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개인과 집단의 차이, 나와 타인의 차이, 아이와 어른의 차이,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와의 차이,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나의 지금 현재 모습 사이의 거리. 그 모든 거리감이 ‘갭’이라는 단어 속에 녹아 있다.

‘갭’이라는 단어는 틈새, 균열, 간극, 차이 등으로 해석되며 A와 B사이에 벌어진 틈이나 거리를 말하지만, 그 거리감이 차갑고 냉정한 것만은 아니다. 제대로 된 거리감을 획득하지 못해 실패하는 관계들이 많다. 커플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모든 것을 공유하다 보면 문득 ‘나만의 시간이나 공간’을 갖고 싶어져 상대방의 사랑이 소유욕이나 집착으로 느껴지곤 한다. 모든 시시콜콜한 세부사항을 다 말해야 하고 상대방에게 내 모든 과거나 숨기고 싶은 아픔까지 다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넘어 ‘집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간극(gap)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을 ‘내 눈에 비친 너’로만 바라보게 된다. 즉 상대방에게는 ‘내 눈에 비치고, 해석되는 그 사람’뿐 아니라, ‘내가 나의 잣대로 해석할 수 없는 낯선 사람’의 모습, ‘내 이해의 폭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타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그 어떤 노력으로도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결코 사랑의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와의 거리감을 ‘존중’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내적 자각이자 더 크고 깊은 사랑이 시작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서로의 자율성을 인정해주는 적절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자식이 부모에게 거리를 두려 할 때, 섭섭하게 생각하지만 말고, ‘이 거리감이 아이를 진정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하고 질문을 던져 보자. 나의 20대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처음으로 독립해 원룸을 얻었을 때, 어머니는 내 원룸 번호키의 비밀번호를 당당히 요구하셨다. 나는 그때 정색을 하고 어렵게 입을 떼야 했다. “엄마, 그건 진짜 독립이 아니잖아. 엄마가 내 비밀번호를 알게 되면, 엄마는 시도때도 없이 이곳에 출입할 거고, 그러면 엄마는 청소를 해주거나 빨래를 해준다는 명목으로 나를 계속 통제하게 되는 거잖아.” 엄마는 그때 엄청나게 화를 내시며, ‘자식 애지중지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논지로 한바탕 한풀이를 하시고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휙 돌아서 나가셨다. 엄마는 내가 이럴 때 정말 ‘정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으시지만, 나는 엄마를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해 그 거리감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존재하기 시작한 그 ‘낯선 거리감’이 처음으로 엄마를 향한 아름다운 거리감을 만들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가 그리웠고, 잃어버린 엄마의 손길이 너무도 달콤한 유혹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싫어서가 아니라 독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함을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이해시킬 만한 ‘마음의 거리감’이 필요했다.

내가 엄마로부터 진정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거리, 공간적 거리는 물론 마음의 거리가 필요했다. 그 뼈아픈 거리감은 결국 부모로부터의 ‘독립’뿐 아니라, 부모를 향한 더 성숙한 ‘사랑’을 시작하게 만든 제2의 사춘기이자 내면의 독립선언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갭은 가끔 차갑고 ‘정 떨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감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그와 나의 다름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대방 뿐 아니라 나 자신도 가끔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제대로 보인다. 때로는 그 쓰라린 ‘거리감’ 속에서, 그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나 자신을 더 깊이 사랑하는 마음의 오솔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