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프랑스 남부의 휴양지 칸에서 열리는 칸국제영화제는 당대 영화미학의 최전선에 서 있는 작품들이 모이는 자리다. 베니스·베를린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지만 권위와 영향력 면에서 단연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초청작에 이름을 올린 작품은 그 자체로 예술성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 극장 개봉 이후에도 상당한 상업적 프리미엄을 누린다. 이 때문에 영화제 라인업 발표 시점이 다가오면 각국의 영화계 종사자들과 시네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칸으로 쏠린다. 올해 칸영화제는 5월 14~25일 개최되며 초청작은 4월 중순께 공개된다. 초청작 발표를 앞두고 올해 행사의 주요 관심사를 키워드로 정리해 미리 살펴봤다.
◇“봉준호 ‘기생충’, 경쟁 부문 초청 유력” 전망=충무로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한국영화의 수상 여부다.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봉 감독은 지난 2017년 넷플릭스와 손잡고 만든 ‘옥자’를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선보였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전작인 ‘괴물’, ‘도쿄!’, ‘설국열차’는 비경쟁 부문에서 상영됐다.
미국 버라이어티, 할리우드리포트 등 유력 외신들은 ‘기생충’의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입성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다. 칸 영화제는 자신들이 발굴한 감독의 작품을 꾸준히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생충’ 역시 봉준호 특유의 허를 찌르는 유머와 날카로운 정치·사회적 통찰이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을 맡은 ‘기생충’은 백수 가족의 장남이 부잣집의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영화로 송강호·이선균 등이 출연한다.
‘기생충’이 경쟁 라인업에 선정되면 본상 수상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벌써 이번이 봉 감독의 다섯 번째 출품인 데다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순수 예술영화보다는 장르영화의 자장 안에서 혁신을 모색하는 연출자라는 측면에서 봉준호와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 출신의 이냐리투는 ‘21그램’, ‘바벨’, ‘버드맨’ 등을 만든 감독이다.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은 지난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각본상)가 마지막이었다. 2016년 ‘아가씨’가 벌칸상을, 2018년 ‘버닝’이 국제비평가연맹상과 벌칸상을 받았으나 모두 본상은 아니었다. 올해 칸 영화제에는 ‘기생충’ 외에 ‘천문’ ‘악인전’ ‘남산의 부장들’ ‘클로즈 투 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등의 한국영화가 도전장을 내민 것으로 알려졌다.
◇칸이 발굴한 거장들, 올해도 대거 각축 벌일 듯=봉준호처럼 칸 영화제가 오랜 기간 애정을 표시해 온 세계 각국의 거장들도 따끈한 신작을 들고 칸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프랑스에서 촬영한 합작 프로젝트인 ‘진실’을 출품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2016년 대상을 받은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는 ‘소리 위 미스드 유’라는 작품으로 치열한 경쟁에 가세한다. 이밖에 장쾌한 액션 연출의 대가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데리고 만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베네딕트 앤드류스가 메가폰을 잡은 ‘어게인스트 올 에너미’ 등도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칸 영화제 “넷플릭스 작품 배제”…갈등 불씨 여전=세계 콘텐츠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넷플릭스가 제작한 작품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는다. 칸 영화제는 지난 2017년 넷플릭스가 제작한 ‘옥자’를 경쟁 부문에 초청했으나 당시 작품의 본질과는 무관한 플랫폼 논쟁만 격렬하게 쏟아졌다. 이후 칸 영화제는 극장 우선 상영을 원칙으로 하는 전통적인 방식에 손을 들어주면서 온라인 스트리밍 기반의 영화를 수용하는 것에는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 초청작 발표를 앞두고도 영화제 집행위원회와 넷플릭스는 막판까지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런 칸 영화제의 모습은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가 넷플릭스 작품인 ‘로마’에 대상을 안긴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당시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1970년대 멕시코의 부조리한 사회 풍경을 재현한 ‘로마’의 뛰어난 예술성에 반해 만장일치로 대상 수상작을 결정했다. ‘로마’를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칸 영화제의 초청작 선정 기준에 대해 “다양한 플랫폼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왔다”며 “넷플릭스 작품을 배제하는 방식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일갈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