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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선임기자의 관점] 인생 다모작 준비하는 '꽃대'들

"퇴직 후 1년이 중요…'과거의 나'는 잊고 평생 현역 길 찾아야죠"

'월급 30만원' 10개 일 한다는 마음가짐 필요

시야를 5도만 옆으로 돌려도 새로운 길 보여

나이 때문에 경력 외면받는 사회인식 바뀌어야

인생 N모작을 여는 꽃대들이 환한 표정으로 하트를 그리고 있다. 스타트업 멘토링을 하는 노상균(왼쪽부터)씨와 귀농해 6차 산업을 개척하는 정성모씨, ‘시니어 여가생활 디자이너’를 준비하는 이명조씨는 인생 다모작과 관련해 “과거의 자신은 잊어야 한다”며 “무엇보다 퇴직 이후 1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퇴직 후 등산이나 골프·당구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지인도 많죠. 1년 정도 지나면 그것도 심드렁해져요. 이제는 ‘초고령 사회’가 눈앞에 다가왔는데 퇴직은 있어도 은퇴는 없는 ‘평생 현역’을 지향해야 해요. 인생 이모작을 넘어 다모작을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 행렬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퇴직 후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새 인생을 개척하는 50~60대 꽃대들의 조언이다. 꽃대는 ‘꼰대’의 반대말로 희망을 주는 중장년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다.

오는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초고령사회’를 맞아 인생 다모작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LG전자 중국 상하이구매지사와 현지회사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7년 귀국해 중국 비즈니스 컨설팅, 중국 문화 강사, 여행 해설사 등을 거쳐 ‘시니어 여가생활 디자이너’를 준비하는 이명조(63)씨와 산업은행 출신으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을 거쳐 2016년 퇴직한 뒤 스타트업 멘토링을 하는 노상균(62)씨, 삼성생명 지점장을 거쳐 정보기술(IT) 벤처의 미국 지사에서 근무하다 2016년 고향인 하동으로 귀농해 6차 산업(제조·가공·서비스)을 개척하는 하동농산 대표 정성모(51)씨의 사례는 후배 퇴직자에게 의미 있는 노하우를 제공해준다. 이 중 이씨와 노씨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퇴직자의 인생 이모작을 위해 만든 서울시50플러스재단(대표 김영대, 이하 재단)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새 인생을 개척했고 최근에는 재단에서 퇴직자 컨설턴트 활동도 시작했다. 정씨는 귀향한 지 3년여 만에 대봉감 와인 개발에 성공하고 협동조합 형태로 주민공정여행사까지 운영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 율곡로 서울경제신문에서 두 차례 인터뷰를 한 이들은 “과거의 나는 잊어라. 경력을 살리면 좋지만 계절이 지나면 새 옷을 입듯이 허물을 벗고 새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이들에게 어떤 계기로 새 인생을 개척하게 됐는지 질문했다.

이씨는 “대기업 상하이구매지사 책임자와 중국 회사 부총경리 등으로 중국에서만 15년을 근무했고 총 32년의 직장생활을 했다. ‘상해 대박의 중국 이야기’라는 책도 냈다. 그런데 60세에 퇴직해 관련 중소기업 등 10곳에 원서를 냈으나 모두 퇴짜를 맞았다. 이 중 네 곳에서 면접을 봤지만 ‘이력이 참 좋다’고만 하고 연락이 없더라. 젊은 층만 취업난이 심한 게 아니다(웃음)”라고 털어놓았다. 이후 재단을 찾아 교육도 받고 여행 해설사, 중국 문화 강사, 편의점 시간제 근무, 도서관 사서 도우미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역시 재단의 도움을 받은 노씨는 “안정되고 봉급도 많은 직장을 다니다 58세에 퇴직해 사실 먹고살 만했다. 그렇지만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외길 인생을 살다 보니 내 인생을 제대로 못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새로운 쪽으로 부딪혀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주특기인 재무금융이나 인수합병(M&A)·프로젝트파이낸싱(PF) 쪽을 떠나 아내와 떡 카페를 창업하기 위해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쉽게 창업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듣게 됐고 재단에서 교육도 받으며 경영자문이 필요한 스타트업과 사회적 기업 몇 곳에 멘토링을 시작했다.

귀농한 정씨는 “직장 다닐 때는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다니는 느낌이었지만 울타리를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했다”며 “마침 기회가 돼 중소 IT 회사의 미국 지사에서 3년간 일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당시 와인으로 유명한 내파밸리의 와이너리를 수없이 둘러봤는데 힐링 문화가 가슴에 깊이 박혔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귀농한 뒤 대봉감이 너무나 헐값이라 주민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한 방법으로 감 와인을 개발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펜션을 짓고 식당과 카페·숙박을 겸하면서 틈틈이 예산 사과 와이너리와 영동 포도 와이너리 등을 찾아다니며 감 와인 기술을 배웠다. 혼자 먼저 귀농한 그는 “가끔 쓸쓸할 때도 있지만 뭔가를 기획해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하는 게 참 재미있다. 마음도 편하고 몸속의 세포가 살아 있는 느낌”이라며 활짝 웃었다.

인생N모작을 여는 꽃대들. (왼쪽부터)스타트업 멘토링을 하는 노상균씨, 귀농해 6차산업을 개척하는 정성모씨, ‘시니어 여가생활 디자이너’를 준비하는 이명조씨가 웃으면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조직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 인생 개척에 나서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씨는 “중소기업에서 외면당해 참 씁쓸했다. 하지만 ‘평생 현역’의 길이 뭘까 고민하다 경력을 살려 중국 문화 강의도 하고 도시여행 해설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다”고 소개했다. 중국인이 심심찮게 들르는 광화문의 편의점에서 9개월간 혼자 고객과 매장을 관리하기도 했다. 서울고령친화마을 전문위원이나 재단 학습지원단으로도 활동했고 관련 기관에서 50세 이상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직종 상담과 필요한 학습 코디 등도 하고 있다.

노씨도 “중기에 재취업하려고 해도 학력이나 경력·나이가 걸림돌이 된다”고 맞장구를 쳤다. 가능하면 사회생활할 때 알았던 사람들과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새로 중국어나 악기를 배우고 스타트업 멘토링도 하며 보람을 찾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정씨는 “고향을 와인마을로 바꿔 머물 수 있는 여행지로 만들고 농산물도 판매하는 꿈을 꿨다. 하지만 문과 출신으로 감 와인 개발이 참 어려웠다. 포도주와 달리 조금만 관리를 잘못해도 감식초가 됐다. 1년 내에 개발하려고 했는데 시행착오 끝에 올 초 3년 만에 개발했다. 다행히 평가가 괜찮다”며 ‘가므로 대봉감 와인’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시골에서는 평판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행동도 조심해야 하는데 이제는 완전히 동화됐다는 말도 했다.



세 사람 모두 퇴직 3~4년이 된 지금 새 인생이 안정기로 접어든 셈이다. 보람과 계획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었다.

정씨는 “‘6차 산업은 6년을 버텨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감 와인을 특산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행히 군청에서 지원과 저리융자도 해줘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다만 시설을 다 갖추는 데는 더 큰 투자가 필요해 좀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며 의지를 보였다. 주민들과 함께 관광객이 지역에 머무르며 문화·역사를 체험하고 농산물도 사가는 주민공정여행사인 ‘놀루와’도 시작했다. 대봉감으로 나만의 와인 만들기, 국악공연, 다도체험, 최참판댁 관광 등 콘텐츠가 풍성하다.

이 말을 듣던 이씨는 “농촌도 살리고 도시민도 힐링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제가 시니어의 여가생활을 디자인하고 일자리도 주선하려고 하는데 협력하고 싶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그는 50~70대가 모인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재단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협조를 얻어 여행 해설, 카페, 음악회나 전시회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내년쯤 노인용품, 예를 들어 사물인터넷(IoT)과 연계한 신발·지팡이, 치매 노인 또는 틀니를 사용하는 노인용 먹거리 판매도 구상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멘토’를 희망하는 노씨는 은행에서 일한 경험을 살린 스타트업 멘토링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 지난해 초 재단을 통해 만난 1991년생 청년 스타트업의 아이돌봄서비스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도움을 줬다. 당시 “도우미 찾기가 힘드니 동네에서 두레처럼 상부상조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고 사업계획서 작성도 돕고 창업진흥원 자금도 연결했다. 이 앱은 4~5월쯤 선보인다. ‘두드림’이라는 탈북 청소년 교육기관에서 3개월간 인턴을 하며 청소년 상담도 했다. 보육원 출신의 1985년생 청년이 보육원 출신을 위한 사회적 기업(브라더스키퍼)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듣고 일부 출자도 하고 감사로 이름을 올렸다. 실내 벽면을 푸르게 가꿔주는 조경사업을 통해 보호 종결 청년 채용을 늘린다는 포부다. 노씨는 “연간 2,000여명의 보육원생이 사회로 나오는데 노래방 도우미, 사채 시장 등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인생N모작을 여는 꽃대들. (왼쪽부터)스타트업 멘토링을 하는 노상균씨, 귀농해 6차산업을 개척하는 정성모씨, ‘시니어 여가생활 디자이너’를 준비하는 이명조씨가 웃으면서 하트를 그리고 있다.


이들에게 퇴직자에 대한 조언도 부탁했다.

정씨는 “인생 다모작이 엄청 힘들다.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어 경력이 디딤돌이 될 수 있는데 사회에서는 나이가 들면 그저 외면한다.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귀농을 준비 중이라면 절박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꿈만 꾸면 그냥 꿈으로 끝난다”고 강조했다. 귀농하려면 지자체와 귀농자를 만나 무슨 농사를 짓고 부가가치는 어떻게 올릴 것인지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농촌에서 잘 어울리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중국통인 이씨는 “시야를 5도만 옆으로 돌려도 새로운 길이 보인다. 퇴직 후 1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 ‘동남아(동네 남아도는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되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도 나오고 모아놓은 재산이 다소 있더라도 다모작을 해 80~90세까지 일하는 게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인생 다모작을 수많은(numerous)이라는 뜻의 인생 N모작으로 표현했다. 고령층이 200만~3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 30만원짜리 10개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라고도 했다. 그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있었는데 4차 산업혁명에서 저렇게 비약적으로 발전해 전기차·드론 등에서 우리를 앞질렀다. 세상은 이렇게 빨리 변한다”며 ‘과거의 나’는 잊으라고 조언했다.

노씨는 “퇴직 후 1년~1년 반은 여행하고 낚시하고 당구장도 가고 재미있겠지만 이후에는 무료해질 것”이라며 “강좌도 많이 듣고 차비와 식비만 벌더라도 뭔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현직 시절 수많은 기업의 흥망성쇠를 보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인생N모작을 여는 꽃대들. (왼쪽부터)스타트업 멘토링을 하는 노상균씨, 귀농해 6차산업을 개척하는 정성모씨, ‘시니어 여가생활 디자이너’를 준비하는 이명조씨가 웃으면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들에게 일부 젊은이들이 소위 ‘헬조선’을 외치는 세태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정씨는 “젊은 층이 진취적인 것보다 현실에 안주하고 이해타산적이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실례로 군청에서 주민공정여행사(놀루와)에 39세 이하 청년 6명을 뽑으라며 인건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는데 3명밖에 지원자가 없다는 것. 농촌도 귀농자에게 주택 등의 보조금과 저리 대출이라든지 여러 지원책이 있어 새로운 틈새시장이라고도 했다. 그는 “젊은 층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스펙도 좋고 조리 있게 표현도 잘하지만 안정적인 것만 원해 스스로 길을 좁힌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옛날보다 기회가 줄어 도전할 데가 부족하다. 답이 별로 없다. 하지만 길이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며 “이제는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융합하고 스마트하게 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그는 중국에서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다가 접고 귀국한 아들에게도 카페를 하더라도 음악회와 독서 등을 즐길 수 있는 융합공간으로 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노씨는 “스타트업 멘토링을 하는 과정에서 젊은 동업자끼리 배신하는 것도 봤는데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 사이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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