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계속 악화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이 나빠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그에 더해 호기 있게 출발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실패가 더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고 최저임금을 16.4%(2018년), 10.8%(2019년)로 대폭 올리면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해 소득 불평등 문제가 완화되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노동시간을 일률적으로 단축하면 모든 노동자의 밤이 즐거워지는가. 게다가 노동운동을 강화하면 노동자들의 삶이 풍족하고 편안해질 것으로 착각했음에 틀림없다. 결과는 모두 반대로 가고 있지 않은가.
문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이념과 경제를 혼동한다는 점이다. 조금 과장해 말한다면, 이념을 앞세우고 현실을 도외시한 것들뿐이다. 참으로 한심하다. 경제를 모르는 대통령과 참모들, 그리고 경제를 모를 리 없는 행정부 아첨꾼들이 초래한 경제현실은 참담하다고밖에 달리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규직화를 강압하면 비정규직마저 고용이 어려워질 것이 뻔하고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면 최저임금노동자의 고용이 악화할 것인데 그런 정도마저 따져볼 줄 모르는 집단이다. 직업과 직장마다 일의 연속성과 휴식 등 속성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52시간을 강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의 역할은 부당한 노동시간 연장을 감시하는 것으로 족하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은 이미 노동자 대부분과 유리돼 있다. ‘귀족노조’라는 냉소적 표현이 이 나라 노동운동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소수 고임금 노동자의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이 땅의 노동운동은 명분을 잃은 지 오래됐다. 전체 노동자를 위한 조직과 운동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결국 나라 경제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암적인 존재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최근 탄력근로제와 최저임금 산정방식 개편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대규모 집회가 국회 앞에서 열렸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반대인지 묻고 싶다. 도대체 노동시장이 얼마나 더 경직적이면 좋겠는가.
이념은 시인 김광균식 표현을 빌리자면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같은 것이다. 21세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이 이미 판명 난 이념과 포퓰리즘에 갇혀 경제를 망친 나라가 한둘인가. 이 순간에도 고개를 돌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를 보라. 더 이상 무슨 교훈이 필요한가. 다시 말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불황은 정책실패가 주된 원인이다. 정책을 담당한 자들이 세계 경제를 탓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원인을 직시하지 못하는데 올바른 대책이 나오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지금 추경을 운위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 매년 되풀이되는 추경은 원인은 다른 데 있는데 현상만 치유하겠다는 것이다.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데 현상을 아무리 제거하려 해봐야 그게 가능할까.
경제가 불황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이번 추경을 무작정 비판만 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정책실패를 습관성 추경을 통해 무마하려 한다는 점이 아쉽다는 말이다. 원인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증적 처방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도 의문이다. 재정은 정부의 노리개가 아니다. 더군다나 실패를 감추기 위한 눈가리개도 아니다. 재정 관리는 정부가 국민에게 부여받은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다. 추경 예산은 대통령의 호주머니나 경제부총리의 은행계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가 망가졌는데 무슨 선심 쓰듯이 추경을 하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추경은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다.
기왕 추경을 하려거든 경제구조를 유연화하는 데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소비형보다 투자형 지출을 하라는 말이다. 지금 눈앞의 불황이 급하겠지만 대한민국 경제의 어려움은 장기관리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경제의 문제는 단기 관리보다는 장기적인 데 핵심이 있다는 말이다. 고령화, 노동시간 감축, 혈전과도 같은 규제, 구태의연한 교육 등 장기적으로 이 경제를 추락시키는 요인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 사용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 퍼주기식 추경에는 반대하고 싶다. 더욱이 대통령이나 집권당의 지지율을 지탱하기 위한 국고낭비에는 더욱이 반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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