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지난 2월27·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후 미국과의 협상 중단 가능성을 경고한 데 이어 3월 중순 기자회견에서도 군대와 군수공업 분야의 핵 포기 반대 입장들을 소개하면서 북한의 정책 변화를 예고했다. 언론에서는 4월 예정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길’을 발표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고 핵 보유 선언과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가 포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은 이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추가 대북제재는 자제시켰지만 제재를 통한 압박을 지속하면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는 물론이고 생화학무기까지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에 더 이상 속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탄도미사일 방어체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핵무기 폭발 시 발생하는 전자기파(EMP) 대비책도 강화하고 있다. 3월 하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의회에서 북한의 비핵화나 군사적 위협에 변화가 없다고 증언했으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국내 강연에서 북한과의 대화의 창을 무한정 열어둘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경우 북한의 오판을 우려·저지·대비하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하노이회담에서도 진전이 있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미국·북한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한 비핵화를 낙관하고 있다. 하노이회담 이틀 전 문 대통령이 언급한 ‘신한반도체제’, 즉 “전쟁과 대립에서 평화와 공존으로, 진영과 이념에서 경제와 번영으로”의 변화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군의 북핵 대비 태세를 강조하거나 점검하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오는 4월11일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듯이 오로지 미국에 의존하거나 미국의 변화를 촉구하려는 태도다. 과연 현 정부는 헌법 66조에 명시된 ‘국가의 독립과 영토의 보전, 계속성과 헌법의 수호’라는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정부가 낙관적이면 군대라도 북한의 오판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인식하지도 않고 그동안 추진해온 북핵 대응 ‘3축 체계’의 개념과 비중도 축소되고 있다. 북핵 대비에 관한 새로운 각오나 전력 증강 노력은커녕 일부에서는 북핵이 폐기됐다는 가정 아래 기존의 대비 노력을 재검토하고 있다.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도 북한을 자극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고 한미연합훈련은 줄줄이 취소되고 있으며 실리콘 지문 출근 등 군기 이완까지 문제시되고 있다. 군대가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안보(security)는 ‘se(without)+cura(care, anxiety)’로 ‘걱정이 없는 상태’다. 정부와 군대가 걱정을 해소해주지 못하면 결국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라도 나서야 한다. 공복(公僕)인 정부와 군대의 안일을 질타하고 북한의 오판을 저지하고 대비하도록 명령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에 관한 현 상황을 정확하게 평가해 보고하고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한미동맹을 강화하며 최악의 상황에서 북핵 억제 및 방어를 위한 자체적인 전략과 태세를 강화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정치놀음에 바쁘니 더더욱 국민이 분발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언론과 지식인들은 북핵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을 헤아리고 정부와 군의 소홀한 대비를 비판해 시정하도록 ‘민중의 지팡이’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프로이센의 군사이론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과 같은 위기 극복의 요결은 정부·군대·국민의 ‘삼위일체(Trinity)’라고 강조했다. 당연히 정부와 군대는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하는 오판을 저지하면서 오판의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와 군대가 소홀하다면 국민은 이를 시정시키고 피·땀·눈물을 각오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 엄중한 북핵 위기를 역경이나 희생 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걱정은 직면해야만 없어지며 폭풍은 고요한 전야(前夜)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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