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동계의 ‘춘투(春鬪)’가 예년보다 시점이 당겨지고 강도도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매년 4~5월쯤 사업장별 임단협 교섭이 시작되지만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탄력근로제 개편안 등 굵직한 노동 관련 이슈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등이 이들 사안에 대한 투쟁 차원에서 사업장별 쟁의행위 시점을 앞당긴 와중에 자체 임단협 문제까지 겹치면 싸움의 기간도 길어지고 각 기업의 손실도 만만찮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2일 노동계와 재계·정부 등에 따르면 오는 16일 금속노조와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들의 노사 상견례가 진행된다. 상견례에서 노사 양측은 임단협 요구사항을 교환하며 노사 교섭의 시작을 알린다. 노조 측은 연초부터 내부 의견 수렴을 거쳐 논의한 임단협 요구사항들을 전달하며 사측 역시 비슷한 요구안을 전한다. 이를 시작으로 춘투 국면은 일반적으로 4월 말부터 전개되지만 올해는 노동계가 각종 투쟁에 힘을 싣기 위해 그 시점을 당길 것이라는 예상이 노사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노동계가 ILO 핵심협약 비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반대, 탄력근로제 개편안 철회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여기에 합법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각 사업장이 쟁의행위 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ILO 핵심협약의 단결권 문제와 연관이 있는 특수고용직 노조들을 중심으로 움직임이 시작됐다.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는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ILO 핵심협약의 비준과 이와 연관된 노동조합법의 개정을 요구하며 13일 건설기계 근로자들의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들과 화물연대·대리운전노조·보험설계사노조 등 특수고용 근로자들은 지난 1일 청와대에 서한을 제출했다. 이들은 총궐기를 통해 정부와 국회를 압박할 예정이다. 금속노조의 경우 ILO 협약 비준 과정에서 노동관계법을 개정할 때 3월 국회에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사안이 통과될 움직임이 보이면 즉각 총파업 등 강도 높은 투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노동계가 각종 이슈에 대한 투쟁 동력을 높이기 위해 사업장별로 쟁의행위에 들어가는 절차를 예년보다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며 “사업장마다 부분파업이나 하루짜리 총파업 등의 횟수가 예년에 비해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일반 사업장별 임단협 문제와 노동 이슈가 결합해 투쟁 강도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민주노총에서 투쟁 동력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금속노조는 10월 집행부를 뽑는 선거를 앞두고 있어 장기간 투쟁은 어렵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ILO 협약 속 단결권 문제나 탄력근로제 개편 등이 조합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서 투쟁 강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렇게 되자 재계에서는 올해 춘투 역시 예년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기업별 차원이 아니라 정부정책과 연결된 투쟁이다 보니 이른 시일 내 매듭이 지어지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노조에서 요구하는 것은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사측에서 어떻게 준비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정부에서 움직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기업들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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