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4월5일, 지중해 동쪽 크레타섬. 영국 고고학자들이 왕궁터에서 ‘신화’를 캐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크노소스 미궁,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던 곳이라는 발굴 현장에서 문자가 새겨진 대량의 점토판도 쏟아졌다. 문자의 종류는 세 가지. 이집트문자와 비슷한 상형문자와 두 종의 선문자(Linear)였다. 옥스퍼드대의 애슈몰린박물관장으로 재임하며 발굴팀을 이끌던 아서 에번스 교수가 이름을 붙였다. ‘선문자 A, 선문자 B.’
영국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존재를 보다 선명하게 증빙하는 동시에 숙제를 남겼다. 일단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독일 사업가 출신인 하인리히 슐리만의 1871년 트로이 발굴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뒀으니까. 전설에서 역사로 들어온 BC 2000~1200년의 그리스 유물도 대량으로 캐냈다. 슐리만처럼 영국 학자들도 호메로스와 헤로도토스·투키디데스가 남긴 문헌에 의존해 성과를 거뒀지만 곧 ‘선문자의 벽’에 맞닥뜨렸다. 해독이 불가능했던 탓이다. 1939년에는 섬이 아니라 그리스 본토 서남부인 필로스에서도 선문자 B와 똑같은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사진)이 출토됐다. 지난 1953년에는 영국의 건축가이며 언어학을 독학한 마이클 벤트리스가 선문자 B를 풀었다.
국내 학자 중 동지중해 문명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 논문을 남긴 송문현 전 부산대 교수에 따르면 선문자 B 점토판 내용의 대부분은 통치용. ‘궁전경제’ 유지를 위한 관료의 인적·물적 통제를 담았다. 당시 난파선 유물과 종합하면 크레타는 고도의 청동기문화와 도자기 제조기술을 보유한 무역국가였다. 선문자 B를 풀면서 유럽문명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에게해의 크레타섬을 거치며 형성됐다는 점이 규명됐으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도 있다. 구원병을 청하는 편지용 점토판이 마르기도 전에 습격을 받아 멸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크레타의 미노스문명뿐 아니라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문명까지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가장 유력한 해석은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부족→성장 정체→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층의 생산계층 수탈 증대→지진 발생→지배층에 충성심도 애착도 없는 민중의 동시적 반란’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힘이 빠지니 이웃도 적으로 돌변했다. 갑자기 사라진 무역국가 크레타를 통해 우리를 본다면 지나칠까. 저성장의 늪에 빠진 무역국가의 양극화 심화와 희망을 상실한 청년·기층민의 모습이 닮은꼴이다. 동서의 지리와 3,500여년의 세월을 넘어.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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