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4월 현재까지 수주 텃밭인 중동 지역 수주액이 전년 동기 대비 70%가량 줄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간 수주액이 지난해 300억달러에서 200억달러대로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국내 해외건설 산업이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가운데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4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4월4일까지 해외건설 수주금액은 62억8,331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03억8,950만달러)보다 40% 급감했다. 수주 건수 역시 15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86건)보다 16% 감소했고 해외진출 업체 수도 211곳으로 지난해(247곳)보다 줄었다. 이는 지난 2006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특히나 수주 텃밭이었던 중동 지역 수주액의 감소세가 가파르다. 중동에 이어 수주 물량이 많았던 아시아 지역까지 올해는 국내 건설사가 힘을 못 쓰는 모습이다. 해외건설 수주액은 2010년 716억달러로 최고를 기록했다. 이후 600억달러 규모를 유지하다 2015년에 400억달러로 줄었고 현재 300억달러 초반에 머물고 있다. 박동규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해외건설 지원 정책을 내놓았지만 아직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면서 “중국 정부는 자국 업체를 적극 밀어주고 있다. 국내 해외건설이 고사 위기에 놓이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이후 최악 실적, 집토끼 뺏긴 해외 건설=해외건설협회 통계를 보면 연초부터 이어진 수주 부진이 1·4분기를 지나도록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4월4일 현재까지 수주 규모는 62억8,331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3억8,950만달러 대비 39.5% 급감했다. 이는 동기 기준 2006년(54억7,676만달러)에 기록한 후 최저치다. 2006년은 한 해 전체 수주액이 165억달러에 불과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내 건설사 진출의 대부분을 자치했던 중동 지역 수주액이 크게 줄었다. 현재까지 8억9,000만달러의 공사가 계약되며 지난해 28억1,000만달러에서 68.2% 급감했다. 2017년 65억6,663만달러에 비하면 7분의1 토막이 났다. 수주량이 가장 많았던 2014년(140억1,604달러)에 비하면 15분의1도 되지 않는다.
중동에 이어 수주량을 책임졌던 아시아도 현재까지 42억9,079만달러에 그치며 지난해 같은 기간 64억4,397만달러에서 33.4%가 감소했다. 중남미 지역도 불과 7억달러 수주에 머물러 지난해 66억4,000만달러에서 89.4%나 떨어졌다.
단 유럽은 9억2,000만달러에서 47억6,000만달러, 아프리카는 18억6,000만달러에서 24억5,000만달러로 각각 415.3%와 31.5%씩 수주액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 역시 전년 대비 기저효과라는 분석이다.
◇2013년 이후 국제 건설 경쟁력 ‘실기’=해외 수주 부진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유가 하락이라는 외부 효과를 기본으로 2013년 플랜트 및 해외 사업 부실 이후 체질개선 시기를 놓쳤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GS건설은 2013년께에만 해외 사업부실로 1조원대의 손실을 안기도 했다. 한 A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2014년에 모든 국내 건설사들이 손실에 부담을 느껴 매우 보수적으로 사업 전략을 바꿨다”면서 “그 사이 중동 텃밭에서 고부가가치 수주는 유럽과 미국에, 저가 수주는 인도·중국 등 업체에 뺏기며 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B 건설사 관계자도 “공격적인 수주전략 대신 수익성 위주의 개발사업에 접근하고 있다”며 “저가수주 후 극심한 손해를 보면서 리스크 관리, 매니지먼트 위주로 사업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가 민간기업을 충분히 북돋워주지 못한 점도 겹쳤다. 미국·중국·일본 등은 범정부 차원에서 개발 대상 국가와 접촉을 시작해 인프라부터 건설·엔지니어링·운영 등 모든 사업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건설 금융부터 뒤늦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투자개발형 사업의 발굴부터 개발·금융지원 등 전 단계를 지원하는 KIND가 설립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 교수는 “정부 부처 간 칸막이 때문에 효율적인 지원이 안 되고 있다”면서 “범부처가 유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제로 베이스’에서 지원책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기술전략연구실장은 “해외건설 사업 진출은 체질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시공만이 아닌 엔지니어링·설계 등 다각화를 위해 지원을 계속해나가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강동효·이재명·권혁준기자 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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