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대검찰청. ‘별장 성접대’와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재수사와 관련해 오전부터 대검 간부들이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전날만 하더라도 대검 내에서조차 수사단 구성은 4월 이후에나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인식한 대검 간부들은 수사단 구성을 서두르는 쪽으로 방향을 급히 돌렸다. 검찰총장은 이날 오전 회의 직후 지방검찰청 가운데 그나마 사건 부담이 적은 청주지검의 여환섭 지검장에게 연락해 단장을 맡으라고 지시했다. 수사 기록 검토는 당일부터 곧바로 시작됐다.
단장이 정해지자 수사단 구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사단 차장검사까지 지정되자 대검은 이날 오후 2시께 공식 자료도 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기자단 브리핑을 갖고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 권고 관련 수사단’을 출범시키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단장과 차장검사만 정해진 상황에서 대검과 각 지검 검사들은 혹시 모를 차출 가능성을 걱정하며 하나같이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과거 두 차례나 검찰 수사를 끝낸 사건인 데다 워낙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인 만큼 검사들 대부분은 김학의 수사단 합류를 꺼리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의지는 단호했다. 이날 오후 부장급 검사 3명의 인선까지 마무리됐다. 단 하루 만에 수사단의 기본 틀이 마련됐다. 검찰총장은 “수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지난해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과 달리 김학의 수사단은 “직접 지휘·감독하겠다”며 어느 때보다 의욕을 보였다.
다만 이달 초 진행된 평검사·수사관 구성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평검사 8명과 23~24명의 수사관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초기에 차출됐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인원이 돌연 대거 친정으로 복귀한 것이다.
5일 복수의 법조계 인사에 따르면 ‘김학의 수사단’은 이번주 초 평검사 8명과 23~24명의 수사·실무관을 인선하는 과정에서 6~7명의 서울중앙지검 인력을 차출 명단에 올렸다가 최종 2명 내외를 선발하는 데 그쳤다. 서울동부지검에 있는 수사단 사무실까지 갔다가 발걸음을 돌린 수사관만 3명 이상이라는 후문이다. 대검과 수사단은 이에 대해 “당초 각 지검에서 검사와 수사관들을 추천받는 형태로 수사단 구성을 진행했으나 서울중앙지검에서만 지나치게 많은 인력이 차출됐다고 판단해 절반 이상을 돌려보냈다”고 해명했다. 각종 굵직한 권력형 비리 사건을 다뤄온 ‘특수통’들이 서울중앙지검에 몰려 있다 보니 나온 현상이라는 설명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정섭 부부장검사와 평검사 2명 등 검사만 총 3명을 수사단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적폐청산과 사법 농단, 기업 수사 등 최근 주요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 산적했다는 이유로 초기 수사 인력의 20% 가까이가 수사단 구성 과정에서 재조정됐다. 수사단은 다른 지검 출신 인력으로 메우느라 조직 구성 완료에만 며칠을 더 소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일반직 공무원들인 수사관이나 실무관들의 경우 과거 수사에 대한 부채가 없고 정치적 이슈에 휩쓸릴 염려도 적어 김학의 수사단 차출에 딱히 몸을 사릴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학의 수사단 관계자는 “명단에 올랐다가 여러 사정 때문에 합류하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왔다가 돌아간 사람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검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이 차출을 특별히 반대한 것은 아니고 대검과 수사단 협의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전했다.
/윤경환·조권형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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