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연 감자가루 공장과 명사십리 원산·갈마지구 해변 리조트 개발 현장에 이어 개업을 앞둔 평양 시내 최신식 백화점까지….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경제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 2차 정상회담 합의 도출 실패로 내상을 입은 채 평양으로 돌아갔던 김 위원장은 지난 4일 경제 행보를 재개한 이후 웃는 얼굴로 경제 현장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북한의 무력 도발 재개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미국의 긴장된 분위기와 대비될 정도다.
결국 이는 하노이 이후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조하며 빅딜을 몰아붙이고 있는 미국을 향해 ‘제재에 굴복할 만큼 경제 사정이 어렵지 않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 된다. 아울러 오는 11일 북한의 대형 정치 행사인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그간 김 위원장이 강조해온 자력갱생 경제강국 건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한 행보인 것으로도 관측 된다. 외부시찰 때 마다 내·외부를 향해 동시에 메시지를 내고 있는 셈이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8일 김 위원장의 평양 대성백화점 방문 소식을 전했다. 이날 현장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최룡해와 안정수 등이 동행했다.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뜻깊은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을 앞두고 수도의 거리에 또 하나의 멋들어진 종합봉사기지,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질적으로 높이는 데 실질적으로 이바지하게 될 백화점이 일떠선 데(세워진 데) 대해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면서 “수도시민들에게 질 좋은 갖가지 식료품들과 의복, 신발들, 가정용품과 일용잡화들, 학용품과 문화용품들을 더 많이 보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날 공개된 김 위원장 화보에는 의류에서 식료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상품들이 빼곡히 진열된 백화점 내부가 배경으로 등장했다. 제재 압박을 강화하면 북한이 결국 경제적으로 힘들어져 비핵화 대화에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외부의 관측에 반하는 북한 내부 모습으로, 외부를 향한 의도적인 노출일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경제 행보는 지난 4일 재개됐다. 그는 김일성 항일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백두산 인근의 삼지연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주민 생활과 직결된 주택단지와 학교, 먹거리 현장인 삼지연 감자 가루 생산공장 시찰에 나선 점이 눈길을 끌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가공하는 기계 앞에 선 모습을 과시함으로써 제재가 북한 주민을 굶길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미국 등 외부에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 위원장이 지난 6일 강원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평안남도 양덕온천관광지구를 5개월여 만에 다시 방문한 행보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원산갈마해안지구는 지난 해 5월 한국을 비롯해 국제기자단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취재를 허용했을 당시 의도적으로 외신 기자들에게 노출했을 정도로 김 위원장이 공들이고 있는 관광지 개발 현장이다. 당시 풍계리 참관에 참여했던 러시아 아르티 소속 이고르 즈다노프 기자는 원산의 대표 명소인 명사십리를 트위터를 통해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와 마찬가지로 6일 공개 된 사진에서도 원산갈마 지구 리조트와 편의 시설 등은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으로,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건설이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됐다. 실제 이날 현장을 찾은 김 위원장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해수욕 계절이 끝난 올해 당 창건 기념일까지 바삐 그 무엇에 쫓기듯 속도전으로 건설하지 말고 공사 기간을 6개월간 더 연장하여 다음 해 태양까지 완벽하게 내놓자”고 주문했다.
이처럼 최근 부쩍 잦아진 김 위원장 경제 행보의 배경은 결국 오는 11일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11일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가 예고 된 날이다. 하노이에서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북한이 새 국정의 방향을 이날 공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이날은 한미정상회담도 워싱턴에서 예정돼 있어 말 그대로 ‘한반도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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