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가린 연등 사이로 벚꽃잎이 날리고 풍경소리가 흘렀다.
‘은은한 풍경소리를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들려줄 수는 없을까.’ 봄바람 품에 안겨 정신이 몽롱해졌는지 허튼 생각이 들었다. 옆에 앉은 김대희 해설사는 요정 ‘대원각’에서 절로 탈바꿈한 길상사의 유래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아는 부분도 있고 처음 듣는 부분도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2019년 오늘의 길상사와 1930~1940년대의 일제 강점기를 넘나들었다. 한양도성 밖 성북동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원래 길상사 터는 친일 기업인 백인기의 별장이었다. 한국전쟁 때 고(故) 김영한 여사가 이 별장을 매입해 요정으로 꾸몄고 장안의 내로라하는 정치가·기업인들이 드나드는 고급 요정 중 한 곳으로 발돋움했다. 대원각의 주인인 김 여사는 기생으로 시작한 요정 주인이었다. 열다섯 나이에 일찍 시집을 갔지만 남편이 우물에 빠져 죽고 권번에 들어 기생 수업을 받아 ‘진향’이라는 기명(妓名)을 얻었다. 영리하고 수완 좋은 그는 강점기 조선을 홍보하는 엽서의 모델이 될 정도로 미모도 빼어났고 문재도 출중해 잡지 ‘삼천리’에 수필을 기고하기도 했다.
진향은 시인 백석과의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일본 유학 후 조선일보 기자로 잠시 일하다 함흥 영생여고 교사로 부임한 백석은 회식자리에서 진향과 함께 앉게 됐고 첫눈에 서로 반한 두 사람의 운명적 사랑이 시작됐다. 백석은 이백의 시에 나오는 오나라의 열녀 ‘자야(子夜)’의 이름을 딴 애칭으로 김영한을 불렀고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갔다.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이 못마땅한 백석의 아버지는 둘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세 번이나 아들을 결혼시켰지만 백석은 그때마다 집을 나와 진향의 주위를 맴돌았다. 자신이 백석의 앞날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한 진향은 결별을 선언했지만 백석은 진향에게 만주로 함께 도피할 것을 청했다. 이 같은 제안마저 거절당한 백석은 ‘먼저 만주로 가서 자리를 잡은 후 부르겠노라’며 떠났고 38선이 막히면서 두 사람은 영영 만날 수 없었다.
이후 요정을 접고 미국에 가서 살던 김영한은 1987년 우연히 법정 스님의 설법을 듣고 대원각을 시주하려고 했지만 무소유의 법정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요즘 종교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받아달라’ ‘못 받겠다’는 실랑이가 10여년간 이어졌다. 1995년 마침내 법정이 고집을 꺾으면서 2년 동안의 개보수를 거쳐 대원각은 법정이 소속한 전남 송광사의 말사인 길상사로 문을 열었다.
김 여사가 오진암·삼청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이던 대원각 터를 법정 스님에게 기탁할 당시 약 2만3,140㎡(7,000평)였던 부지의 시가는 1,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거금 1,000억원이라고 해봐야 휴전선에 가로막혀 만날 수 없는 옛 연인 백석의 시 한 줄에 비하면 의미 없는 액수였다. 김 여사는 “그깟 1,000억원,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말한 뒤 미련없이 대원각 터를 기증했다.
1999년 11월 김영한은 ‘나 죽으면 눈 많이 오는 날 뼈를 이곳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유언대로 그의 유골은 경내에 뿌려졌고 지금은 공덕비 하나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성북동의 로맨틱한 이야기가 깃든 곳은 길상사뿐이 아니다. 도성 밖 성북동은 원래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었으나 영조 때 군인들이 주둔하기 시작했고 그 식솔들이 천을 빨아 종로 저자에 팔 수 있는 권리를 줘 생계를 잇게 했다. 그래도 빈곤을 면할 수 없어 유실수를 심어 과수원으로 생계를 잇게 했는데 그 덕에 봄이면 복숭아 꽃이 만발해 일제 때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각광 받았다. 1930년대 후반 들어 도성 안이 포화되면서 돈 없는 문화예술인들이 자리를 잡았고 소설가 이태준의 수연산방, 간송 전형필의 간송미술관,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등이 들어섰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는 재벌의 저택과 대사관들이 모여들어 부촌을 형성했고 현재 40개국의 대사 관저가 위치해 있다. 또 선잠단지 아래에는 시인 조지훈, 화가 김환기, 전 국립박물관장 최순우,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염상섭,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한 시인 김광섭 등의 생가터 모여 과거를 반추하고 있다. /글·사진=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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