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인 21일 스리랑카의 성당과 호텔 등 8곳에서 잇따라 폭발이 발생하자 지난 2009년 내전을 끝낸 후 한동안 폭력사태가 뜸했던 스리랑카에서 10년 만에 다시 테러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이날 발생한 일부 사고가 자살폭탄 공격으로 알려지면서 소수파인 기독교도나 외국인 관광객을 노린 테러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스리랑카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후 연쇄 폭발 사건의 용의자 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있는 성안토니 성당과 5성급 호텔 3곳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이어 비슷한 시각에 인근 네곰보와 동부 해안 바티칼로아에 있는 가톨릭 성당 2곳에서도 각각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폭발은 오후에도 계속됐다. 콜롬보 인근 데히왈라의 한 호텔에서 7번째 폭발사고가 일어났으며 이어 콜롬보 북부 데마타고다에서 8번째 폭발이 발생했다. 이날 연쇄폭발로 최소 207명이 숨지고 450여명이 부상했다.
현지 경찰과 목격자들은 폭발이 일어난 성당에서 부활절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샹그릴라호텔 등 폭발이 일어난 호텔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구체적인 피해 상황이 확인되면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외국인 사망자가 30여명으로 알려진 가운데 한국 교민의 피해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폭발이 발생한 성당 중 2곳의 경우 자살폭탄 테러가 의심된다고 익명의 당국자가 통신에 밝혀 스리랑카 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실제 이날 8번째 발생한 폭발은 자살 테러로 밝혀졌다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아울러 스리랑카 경찰청장이 열흘 전 자살폭탄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던 것으로 알려져 테러 가능성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경보문은 “NTJ(내셔널 타우힛 자맛)가 콜롬보의 인도 고등판무관 사무실과 함께 주요 교회를 겨냥한 자살 공격을 계획 중이라고 외국 정보기관이 알려왔다”는 내용이 담겼다. NTJ는 불상 등을 훼손하는 사건으로 지난해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스리랑카의 무슬림 과격 단체다.
스리랑카는 국민의 70% 정도가 불교를 믿지만 콜롬보에는 불교뿐 아니라 성당과 이슬람사원 등 다양한 종교시설이 있다. 특히 스리랑카는 식민지 시절 가톨릭과 기독교가 불교와 힌두교 등 기존 종교에 대해 벌인 폭력과 탄압의 역사 때문에 독립 이후 가톨릭·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탄압이 심각한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리랑카 내 200개의 성당과 교회를 대표하는 스리랑카 기독교연맹은 지난해 기독교인에 대한 위협과 폭력사건 등이 86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26건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는 부활절에 발생한 이날 폭발 사고가 종교적 테러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테러를 ‘잔인한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스리랑카의 기독교 공동체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경찰은 아직 테러의 배후를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하지 않았고 폭발 원인과 사용된 물질 등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긴급안보회의를 소집해 상황 파악에 나섰으며 부정확한 정보와 유언비어의 유통을 막는다며 모든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메신저 접속을 금지했다. 또 이날 오후6시부터 다음날 오전6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렸고 학교도 24일까지 휴교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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