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기초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이 일부 동호회에게 우선 할당된다는 점이다. 자치구에서는 체육회 산하 협회에 등록된 이들에게 우선 배정하도록 한 규정을 내세우지만 스포츠 동호인들 사이에선 이같은 규정이 부당하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모든 구민들이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3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일선 자치구들은 구청이 운영하는 체육시설에 대해 산하 경기단체에 가입된 동호회에 특정 시간대를 우선 배정하고 있다. 이들 단체에 소속된 동호인들이 사용하고 남은 시간대들이 선착순 또는 예약 등의 형태로 일반 동호인들에게 개방된다.
서초구의 경우 구 축구협회에 속한 동호회에 매주 토·일요일 이틀 동안 반포종합운동장과 양재근린공원 축구장을 각각 10시간과 11시간씩 배정하고 있다. 일반 동호회 두 팀이 함께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매주 20팀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다. 광진구가 운영하는 아차산배수지체육공원의 경우 역시 토요일 16시간 중 4시간을 협회 소속 동호회에 할당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구청들이 체육회에 소속된 동호회에 시간을 따로 빼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한 구청 관계자는 “우선 배정은 생활체육진흥조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동호인들은 이 같은 조례·규정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자치구 산하에 체육회나 경기단체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동호인들이 많은데다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특정 동호회에만 운동장을 우선 배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10년 넘게 축구동호회에 참여해온 조모(33)씨는 “특정 동호인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기득권을 누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설 좋은 축구장을 예약하기 위해 일반 동호인들은 ‘예약전쟁’을 치러야 한다. 조 씨는 “구장마다 예약 스케줄이 전부 제각각이라 알람을 켜놓고 일일이 챙겨야 한다”면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이 빠른 PC방을 찾기도 하는데 이렇게 해도 성공률이 20%가 채 안 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반 동호인들은 ‘우선 배정’ 자체도 문제지만 협회 소속 동호인들에게 배정되는 시간도 황금시간대에 몰려있다고 지적한다. 은평구가 운영하는 은평구립축구장의 경우 우선 배당하는 4시간을 동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간대 중 하나인 일요일 오전 8시에서 12시 사이에 할당하고 있다. 서초구 반포종합운동장의 경우도 주말 오전 7시부터 오전11시까지 구 체육회 소속 동호회 세 팀에 우선 할당된 상황이다. 박 씨는 “주말 오전은 평일에 운동하기 힘든 직장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간대”라며 “일반 동호인들에게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일반 동호인들은 이같은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고 운동을 즐기려는 모든 동호인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광진구에 거주하는 김모(29)씨는 “자치구 체육회에 소속된 동호인들도 우리와 같은 구민”이라면서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기회를 보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치구들도 일반 동호인의 불만을 알지만 당장 규정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현욱 서초구청 체육진흥팀장은 “자치구 축구협회 산하 동호회에는 최소 규모로 배정하려 하지만 현재 할당 시간을 더 줄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허진기자 hj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